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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ny Apr 26. 2022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은 당신에게 꽃을 선물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당신은 매번 그러는 것처럼 꽃이 핀 화분을 사오고는 집에 있는 화분에 정성스레 심어주었다. 요 며칠은 마음이 가라앉고 마음이 꼬여있던 터에 날카로운 몇 마디에 가슴에 박혀 이전의, 이전하고도 이전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 내던 때였다. 물론 당신이 조금 더 말을 부드럽게 해주었다면 나아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울음이 터질 일은 아니었다. 


마음이 푹 가라앉는 시기가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으며 모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스스로의 아픈지점을 촘촘히 발견하고 그 의미를 다시 해석하고 다시 상처받으며 또 가라앉는다. 결혼 전에는 그런 시기가 오면 홀로 며칠 방에 박혀있다가 나오면 나아지고는 했다. 결혼하고서는 이런 날이 오면 무방비상태로 직면하게 되버린다. 이런 날이 되면 아픈 고리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놓는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이전의 상처났던 마음들과 집에서 육아에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친 마음들이 겹쳐 결국에는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하루종일 아이와 맘맘마 빠빠빠 꿍야꿍야 하고 대화하다보면 '나'라고 하는 정체성이 너무나도 옅어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때 기뻐하는 사람이었는지 더 희미해지고나면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당신이 그런 나에게 섭섭하다며 상처라는 말이 내 마음에도 박혔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언제나 함께 해주는 것도 나를 생각해주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집 구석구석 나의 물건 구석구석에 당신의 사랑이 묻어 있는 것을 내가 모를 리 없다. 나를 위해 꽃을 사달라고 하는 나의 말에 당신은 꽃이 활짝 핀 화분을 사왔다. 일하는 틈새시간을 내어 화분을 사오고 정성스레 심어준 당신을 보며 깊이도 감동한 나를 알지 모르겠다. 


당신의 사랑 같다고 생각했다. 화려하고 갖춰져 예쁘지만 금방 마르고 흩어져버리는 꽃다발보다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지더라도 다음의 꽃을 또 준비하여 피우는 화분같은 마음이 더 당신과 어울린다.  노오란 화분에 꽃이 참 예쁘다. 다시 또 열심히 살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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