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 Apr 27. 2021

놰향적 인간입니다.

애매한 세상에 창조적 답변을

MBTI가 유행하며 가장 난감했던 건 내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성격의 소유자란 사실이었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이 나의 외향/내향성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어떤 모임에서는 나의 MBTI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반면 또 다른 모임에서는 “네가 E(외향성)라고?”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뭐랄까, 내가 사기를 친 것도 아닌데 어쩐지 당황하여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아 그게, I(내향성)에 가까운 E(외향성)인 것 같아”


오늘 기준(2021/4/27) 나의 MBTI는 ENFJ-T이다. 정의로운 사회운동가(ENFJ) 중에서도 비교적 예민하고 타인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T타입이란다. (또 다른 타입인 A타입은 남의 눈치를 덜 보는 타입이라고) 아래는 ENFJ에 대한 설명 중 일부다.


[진심으로 사람을 믿고 이끄는 지도자]
사회운동가형 사람은 진정으로 타인을 생각하고 염려하며, 그들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면 발 벗고 나서서 옳은 일을 위해 쓴소리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과 별 어려움 없이 잘 어울리며, 특히 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보고 의사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중략) 타인의 의도나 동기를 쉽게 파악 후 이를 그와 개인적으로 연관 짓지 않으며, 대신 특유의 설득력 있는 웅변 기술로 함께 추구해야 할 공통된 목표를 설정하여 그야말로 최면에 걸린 듯 사람들을 이끕니다.
출처 : https://www.16personalities.com/ko


정말 그런가 하나씩 짚어보자. 우선 ‘발 벗고 나서서 옳은 일을 위해 쓴소리’는 부분적으로는 맞는 것 같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편이다. 정확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 ‘다른 이들과 별 어려움 없이 잘 어울리는’은? 그런 편이지만 이상하게 나보다 에너지가 강한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주눅이 든다. 반대로 비교적 말 수가 적은 친구들 앞에선 광대가 되어 그들의 벽을 허무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사람을 이끄는 지도자’란 웅장한 네이밍은 아무래도 오그라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회장보다는 부회장 정도가 만족스러운 사람이다.


그 밖의 N(직관적),F(감정적),J(계획적)의 세 가지 속성에는 스스로도 비교적 동의가 된다. 역시나 마음이 걸리는 건 MBTI의 가장 앞자리, 외향과 내향을 결정짓는 속성이 E, 즉 외향으로 시작된다는 거다. 솔직히 이건 질문부터 고르기 애매했다.


예컨대

‘나는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는 모임을 좋아한다’

‘나는 친목 모임보다 혼자 있을 때 더 즐겁다’

이런 류의 질문에 어찌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다. 어떤 날은 사람들과 어울려 진탕 술을 마시고 싶고, 또 다른 날은 홀로 조용히 독서나 하고 싶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에너지가 되는 날이 있고, 어느 날은 서로의 호흡이 맞지 않아 공연히 기운만 빠지기도 한다. 이건 모임의 성격이나 구성원, 혹은 그 시기 나의 심적, 신체적 리듬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뭐 사실 베스트는 MBTI도 별자리나 사주를 보듯 심플하게 넘기는 거다. 다만 요즈음엔 MBTI가 종종 모임, 심지어는 회사에서도 대화의 주제가 되고, 누군가에 대한 인상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에 영 신경이 쓰인다. 외향적이라고 나를 소개했다가 모임의 MC라도 시키면 난감하다. 내향적이라고 한다면 마냥 조용한 애라고 생각할지도. 나란 사람은 일관성이 없는데 한 가지의 성격으로 정의 내려져야 한다니 참 어렵다.


“놰향적 인간인 것 같은데?”


이런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있던 내게 친구는 인스타 툰 하나를 보여줬다. 뱀비(@no_easy_world)님의 <애매하게 내성적인 사람 특징> 시리즈 였는데, 거기선 나처럼 애매한 인간을 ‘놰향인’이라 정의하더라. 엉뚱하고도 창조적인 그 발상이 너무 유쾌하고도 맞는 말 같아서 웃음이 터졌다. 덕분에 지난 몇 달간 불필요하게 답답했던 마음이 속 시원해졌다. 뭐랄까 옷 가게에서 무엇을 살지 오랜 시간 고민할 때 ‘둘 다 사’라고 쿨하게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그러니 앞으로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상호 간에 오해할 일 없도록 이렇게 소개할 예정.


E&INFJ-T (놰향적이며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부회장 희망)


작가의 이전글 간헐적 고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