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또 하나의 부캐(Lv.1)가 생성되다.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노트북을 펼친 뒤 동그란 안경을 썼다. 왼쪽에는 아이스커피가, 오른쪽에는 가을맞이 BGM이 흘러나오는 아이폰이 놓여있다. 나, 이러니 정말 작가가 된 것 같잖아?
브런치는 처음이라, 작가도 처음이라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곳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별도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승인 후 '작가'라는 호칭이 주어진다는 것을 한 블로그 글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아무나 글을 쓸 수 없다는 점과 '작가'라는 호칭이 주는 매력은 나에게 굉장했고 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지 20분 만에 끄적끄적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블로그에서 그나마 브런치다운(?) 글을 골라 첨부하며 '그냥 한번 해보지 뭐!' 하는 가벼움 반과 '그래도 혹시나?' 하는 진지함 반으로 작가 신청을 마쳤다.
그리고 며칠 후, 이렇게 나는 처음으로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생겼다.
글 쓰는 혜미, 또 하나의 부캐
앞으로 이 공간에 내 전 직장 이야기와 퇴사 이야기를 써내려 갈 예정이지만 현재의 나를 소개하자면 나의 지금 본캐(본래의 캐릭터)는 '백수'이다. 나는 나를 백수로 부르는데, 주변에서는 '이직 준비생'이라고 하라며 나를 예쁘게 포장해준다. 경력이라곤 4년간의 공무원 생활뿐(그나마도 안쳐주는 곳이 많겠지)인 나는 현재 이렇다 할 직업이 없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부캐(부수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1. 블로거
블로그를 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대학생 때부터 블로그에 끄적거리기를 좋아했고, 나의 복잡한 머릿속을 글로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 정도 후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2년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썼던 우울함 가득한 일기, 공무원에 합격했을 때 썼던 기쁨의 일기, 현직 생활을 하며 괴로워했던 일기들을 내 블로그는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상품을 협찬받고 맛집을 홍보하는 엄청난 파워블로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혼자 끄적대는 글을 봐주는 이웃들이 있고, 그 글을 읽고 위안을 받는 분들이 있기에 블로거는 나에게 가장 오래된 소중한 부캐이다.
2. 유튜버
공직생활이 힘들어서 재미로 시작했던 유튜브가 현재 구독자는 8천 명이 넘었고, 소소하지만 커피 마실만큼의 수익을 벌고 있다. 일만 명도 안 되는 숫자이지만 나에겐 아직도 감개무량한 숫자 8천 명. 시간이 꽤나 소요되지만 키우는 재미가 제일 쏠쏠한 부캐이다.
3. 작가
세 번째 부캐가 생성됐다. 글 쓰는 혜미(32살, Lv.1). 작가라는 호칭은 너무 매력 있지만 아직까지 민망한 것이 사실이다. 조금이나마 덜 부끄러우려고 이하루 작가님의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를 E-book으로 다운받아 두었다.
될까요? 될 거예요!
아니, 안되면 어때!
모든 부캐들이 취미에서 시작됐기에 어느 하나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지금껏 즐길 수 있었던 것이겠지. 아쉬움은 뒤로 하고, 즐기자!
프로필 편집과 첫 글쓰기 버튼
브런치 작가가 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브런치 프로필 편집이다. 작명 센스가 부족한 나는 작가명에서부터 턱 막혀버렸다. 별명을 쓰기엔 가벼워 보이고 영어를 쓰기엔 입에 안 붙고 실명을 쓰기엔 심심하다는 각각의 이유로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은 처음 찍은 것이 답이다'라고 했던가, 돌고 돌아 결정한 작가명은 처음 딱 떠올랐던 단순한 이름인 '글쓰는혜미'. 나를 가장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에는 내 실명을 넣고 싶다는 결론이었다. 작가명을 결정하고 기타 이력을 힘겹게 채워 넣어 겨우겨우 프로필을 완성했다.
이제는 글쓰기다. 첫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첫 이야기를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이 많았지만 무겁게 시작하면 글이 더 안 써질 것 같아 블로그에 글 쓰듯 가벼운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채워나가고 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어느 일이든 너무 힘을 주면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너무 힘을 주고 부르는 노래보다 말하듯 부르는 노래가 듣기 더 편한 것처럼, 내 글들에도 나라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면 좋겠다. 엔터키 없이 줄줄이 쓰는 문체가 어색하지만 문장 문장을 쌓아 문단을 만들어 가는 느낌이 꽤나 재밌다.
시작을 힘겨워하는 나이기에 이렇게 브런치 작가로서 쓰고 있는 '첫' 글이 참 소중하다. 몇 명의 구독자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시작을 했다.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니어도, 스스로 느끼는 '나만 아는 성취감'은 작지만 엄청난 힘이 된다. 짧은 분량의 첫 글이지만 이렇게 글 한편을 완성해 가는 게 뿌듯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쓸 글들이 걱정도 된다. 이런 마음이 바로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인가.
첫 발행 버튼
발행 버튼을 누르는 일만 남았다. 첫 글은 시작도 어려웠는데, 끝도 어렵구나. 힘줘서 쓰지 않기로 해놓고 발행 버튼 누르기는 왜 이리 힘이 들어가는지. 나중에 보면 이 첫 글이 부끄러울 만큼 앞으로 내 글쓰기 실력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글 쓰는 혜미의 브런치 글 첫 발행을 자축하며, 해피 추석! (오늘은 추석 연휴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