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자 Oct 26. 2015

우울증 경력 8년 차

우울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에 관하여

내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력서를 쓰는 일이다. 네모 반듯한 칸에 내가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는지 적어나가다보면 딱히 경력이라 부를 만큼 정직하게 쌓아온 것이 없어 늘 민망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없을까, 고민하다 보면 하나의 생각에 닿는다.


'경력 8년의 우울증 환자'




비교적 이른 나이에, 참 꾸준히 우울증을 앓아 왔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았다. 주로 약물치료와 개인상담.

8년 간 쉬지 않고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내린 결론은 우울증은 치료가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처칠이 우울증을 비유했던 'the black dog'이란 표현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공감을 한다. 평생 키워왔기 때문에 함부로 총으로 쏴 죽일 수 없는 검은 애완견과 같은 존재.

혹은 존 내쉬의 삶을 그린 '뷰티풀 마인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정신분열 환자가 자신의 환영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하는 것처럼, 우울증 환자에게도 우울증이란 그런 것이다.


심지어 암 환자들도 8년이라는 시간 안에는 치료가 되거나 세상을 떠나거나 둘 중에 하나의 결론을 볼텐데, 우울증은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결국 많은 우울증 환자들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취한다. 그러다보니 우울증 치료의 목적은 삶의 '개선'까지는 가지 못하고 삶의 '유지'가 된다. 일단 죽지 않으면 우울증 치료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다.


나 역시 자해와 자살 시도에도 불구하고 8년이란 세월을 살아내었다. 8년의 치료로 얻은 소득이 있다면:

1) 현실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마감한다는 선택이 나에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운 것.

2) 어찌 됐든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죽은 시체보다는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자세.


오늘도 나는 나에게 생이라는 시련을 준 부모님을 원망하고, 아직 목숨이 달려 숨을 쉬고 있는 내 몸뚱아리를 미워하고, 그래서 남들처럼 평범한 하루 대신에 이불 속에서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을 살아내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안도를 하는 한편 어쩔 수 없이, 불행함을 느낀다.




병원비와 상담비를 지불해야했던 내 부모님 외에는, 내 절친도, 내 지난 애인들도, 내 동창도 직장동료들도 내 우울증 경력 8년에 대한 조금의 단서도 없다. 오히려 나는 겉으로는 지극히 멀쩡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우울'과는 전혀 상관없을 만큼 반짝거리는 사람이다.

우울증 환자란 그런 사람이다.


우울은 나약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하는 사람,

우울이라 하면 술, 초콜렛, 여자/남자친구, 수다, 쇼핑, 여행을 떠올리는 사람,

우울이라는 단어에 괜히 끌리는 사람,

나보다 더 오랜 우울증 경력을 지닌 사람,

괜히 스스로 우울증은 아닐까 의심 되는 사람,

우울이란 뭔지 일생동안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


그 모든 사람을 위해 우울증 환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