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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자 Oct 10. 2018

햇빛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 잘 풀리지 않는 시간들이 있다

1. 심리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꽤 지겨운 일이다. 왜냐면 맘에 들지 않는 자신과 마주해야하기 때문이다. 내 지난 마음 상태가 이러했고 그래서 일도, 삶도 제대로 못 가꿨다는 기록. '역시 내가 또 그랬지', '말해 뭐해' 싶은 생각에 접는다. 이런 내가 정말 지긋지긋하다,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 싶은 마음 한 켠에는 영영 이대로 - 살짝 습하고 어둑어둑하고 끈적거리는 이 곳에 영영 갇혀서 내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왜냐면 불을 켜고 창문을 열면 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싶다. 지금같은 때. 수도 없이 겪어서 데자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 때.


2. 이런 심리는 사실 철없고 무책임한 것이다. 때를 쓰는 아이와도 같다. 아이는, 맘에 들지 않으면 징징거린다.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을 바꿀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똥을 싸도 기저귀를 혼자 갈지 못한다. 친구의 사탕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대개는 아이들에겐 엄마가 있다. 하지만 엄마가 없는 성인의 나는? 교과서적인 답은 뭐 스스로의 엄마가 되어줘야한다 이런 것일 것이다. 그런데 엄마 중에서도 엄마 역할을 못하는 사람이 있잖아, 그게 바로 나인 것이다.


3. 지금 인생이 못마땅한데 앞 길을 스스로 판가름하지 못한다.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 중 간혹 갖고 싶은 것 - 내 것이 아닌 - 이 보이는데 그 마음에도 의구심을 품는다. 어렵고 힘든 건 마치 엄마가 생선 가시를 발라내듯 다 발라내고 좋고 멋진 것만 취하고 싶은 것. 그래서 길을 가다 어렵고 힘든 걸 마주치면 그냥 그 하기 싫은 마음에 굴복되는 것. 남들 다 보는 길가에 주저 앉아 엉엉 울어대는 자신이 쪽팔리고 싫으면서도 그렇게 엉덩이를 뭉개고 앉아 있는 나. 참 아이러니하다.


4. 사람은 당연히 멀어진다. 비정상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은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접시를 닦아내는 것만큼 당연할 것이다. 나조차도 그렇고. 사람이 멀어지면 고립은 심화되고, 고립이 길어지면 사람은 더욱 멀어지고, 악순환이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이상,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그런 천사 같은 거, 촛불 같은 거는 없다.


5. 어제 만난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서 우울이란 걸 겪어보지 못했다는 (거짓)말을 하더라. 자기애가 넘쳐서 그렇다고 덧붙이는 얼굴에 절박한 외로움이 보였다. 유유상종이라고. 그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긴 하겠지. 우울은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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