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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자 Dec 23. 2015

삶이 좀 쉬웠던 적이 있었나요?

질문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떨궜다.

지금처럼 삶의 무게가 너무 버겹게 느껴질 때는 자판을 누르는 것조차 힘들다.


상담을 받지 않겠노라 다짐 했지만, 약 2달 전에 상담이 꼭 필요했던 시기를 겪으면서 대기를 달아뒀던 상담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야 시간이 났는데 상담 받으시겠냐고. 이제까지 내가 받아 온 상담과는 다른 접근법의 상담을 표방하는 곳인지라 일단은 받아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꽤나 복잡한 환승을 거쳐서, 생각보다 작고 낡은 상담센터에 도착했다.


"오늘 이 자리에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8년의 우울증 경력을 꺼내면 아무리 베테랑 상담사라도 적잖이 희소하게 보는 눈치이다.


"이제까지 거친 상담선생님은 몇 분이나 되나요?"


한번도 실제로 세본 적이 없었건만, 손가락을 꼽아보니 1, 2, 3... 약 8명. 의사는 제외. 1년에 1명 꼴.


"그럼 상담에 대해선 정말 잘 아시겠네요."



그리고 이제껏 약 8차례 간 그래왔듯이, 9번째 상담사 분께 나를 설명드렸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이미 무려 8번이나 해본 일인데도, 단 한번도 울컥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이제 익숙해질 때쯤, 이제 초연해질 때쯤 되지 않았나? 아니면 상담사 앞이라고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약해지는 건가?



'태어났기에 살고 있다, 죽지 못해 살고 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다. 생명을 선물하기 싫기 때문에 아이를 낳기 싫다' 등의 견해를 풀어놨고, 이에,


"지난 세월동안, 삶이 좀 쉬웠던 적이 있나요?"


라는 그녀의 질문에,


'쉽다'라...

내 우울한 인생에도 좋은 순간, 기쁜 순간, 즐거운 순간, 짜릿한 순간, 행복한 순간, 보람된 순간, 뿌듯한 순간들 있었다. 그런 찰나들은 있었다 하지만, '쉬웠던 순간'이라...


차마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숙이며 눈물을 떨궜다.


버겁게 살아 온 인생이었다. 그리고 숨이 붙어 있는 한 남아 있는 버거움에 갑갑해졌다.


입으로는 바른 소리를 많이 했다. 왜냐면,

우스운 일이다.

겉으로 보면 말짱해보이겠지. 가족, 집, 직장, 친구, 뭐가 더 부족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항상 그런 식의 생각을 갖고 사셨나요?"


'네, 아니면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결코 우습기만 한 사실은 아니란 걸 사람인 이상 알 거다. 우리가 그렇게 저차원적인 존재가 아니란 것을. 특히 우울증은 - 마음의 질병은, 그런 물리적/물질적 조건만으로 설명되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그렇게 다음 방문을 기약하며 월급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긁고,

결국 상담도 그것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그 서비스를 받을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상품임을 깨달으며, 자본주의를 욕하며, 그렇게 소용없는 짓을 또 되풀이하며, 늦은 밤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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