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aturk cultural center에 아들을 데리고 가는 이유
내가 아직 어리던 시절, 내가 살던 도시에는 백화점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 시절에만 존재했던 백화점 버스 첫 차를 타고 친구와 나란히 앉아 종알종알 떠들었다. 생각해 보면 하도 떠들어서 버스 기사님께 야단도 맞았던 것 같다. 얼마나 친구랑 이야기를 계속했을까. 버스 안에서 우리는 몇 달 동안 모은 돈을 들고 읍내로 나서는 옛날 어르신처럼, 집에서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가장 반짝이는 신발을 신었던 것 같다.
백화점 지하식품관, 친구와 나는 피자 한 조각과 콜라 세트를 먹곤, 또다시 걸어 나가 롯***에 가서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만 존재했던 대형 음반사에 들어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음반을 구경하며 음악을 듣고 문구를 구경했다. 그리곤 고심 끝에 고른 아기자기한 문구를 사고 곱게 가방에 넣었다.
친구와 이렇게 먹고 물건을 사고도 남은 돈이 있었던 그 시절, 우리 동네에선 팔지 않던 하얀 생크림에 과일을 송송 넣어둔 빵까지 야무지게 사 먹고는 두 볼과 배가 모두 빵빵해졌다.
그리곤 어느 날, 선생님이 숙제를 주셨다.
'미술전시회를 다녀와서 감상문 쓰기'
그 시절, 볼이 빵빵했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은 백화점 제일 꼭대기 층이 유일했다. 그렇게 나는 백화점 제일 꼭대기에 친구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그림을 보러 갔다.
'박수근 전시회'
이스탄불에 살면서 아들은 어느새 영어가 더 편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인생사에 얻은 게 있다면 잃은 게 있지 않은가. 보통 이 나이의 한국아이가 동네의 편의점을 가고, 학교를 스스로 걸어가는 것과 달리 아들은 여전히 시떼(아파트 단지) 밖을 혼자 걸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치안적으로 비교적 안전한 이스탄불이지만, 외국인인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자유롭진 않다.
아들의 나이의 내가 혼자 동네 앞의 온 사람들과 인사하고, 엄마없이 저 멀리 살던 친구네 집에도 놀러 갔던 것과 달리, 아들은 넓은 세상인 타국에서 삶을 살며 다른 나라의 어린이와 친구를 하고, 다른 문화권인 사람과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상의 가장 작은 공간인 학교와 집 이상을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없다면, 아들은 이 시떼 밖을 나가려고 할까. 학교에서 만난 다른 나라 친구의 생일잔치를 가고 그 옆에 언제나 서 있는 엄마, 아빠. 아들은 학교라는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국적과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지만, 이스탄불에 살면서도 한편으론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공간만을 매일 향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느새 또 방학, 4년 차의 국제학교의 엄마에겐 이제 학교가 쉬는 것은 참으로 익숙하다. 이 많은 방학들을 잘 보내려고 어쩌면 아들이 너무 재미없다고 말할 이스탄불의 공연과 전시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탄다. 그리고 그림을 바람 같은 속도로 감상한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이거 내가 더 잘 그릴 수 있다."
"그래? 그럼 오늘 그리도록!"
화가 박수근의 그림의 가치와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던 어린 나와 네가 아무도 없던 백화점 꼭대기 층에 미술 숙제라며 어린이 표값 거금 천 원을 내곤 미술 전시 티켓을 처음 받아 들었다. 한참을 제목을 보고 그 그림들을 바라보던 나는 친구와 전시 관람을 끝내고, 다시 문구점에 가서 전시회 티켓을 감상문 종이에 붙이기 위해 풀을 샀다. 그리곤 우리는 제법 심각했다.
" 아까 그림 왜 그렇게 우둘투둘하냐."
" 너도 느꼈냐? 종이 젖었다가 말리면 그렇잖아. 엄청 덧칠했나. 아닌가. 종이가 낡았나"
" 작가 이름이 뭐였더라?"
" 됐다. 빵이나 먹자."
지금이라면 클릭 한 번에 모두 찾아봤을 작가의 수많은 정보들. 그 어느 것 하나도 모르던 너무 어리숙했던 우리들. 그래서 오히려 더 멋진 감상을 할 수 있었던 우리는, 그 우둘투둘 한 그 그림은 무얼 써서 그럴까 고민하며 두 볼을 가득 하얀 생크림빵을 넣곤 맛있다를 연발한 꽤 멋진 감상가들이었다.
https://maps.app.goo.gl/9MHvLALJBXDeHhDp6
*미술, 음악, 발레, 오페라 등 각종 공연 예매는 아래의 사이트를 이용하면 한 번에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스탄불 여행이 길다면 탁심광장 앞, 이 곳에서 공연을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https://biletinial.com/tr-tr (각종 공연 및 전시 예매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