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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솔직해진다면

입춘, 이스탄불 언어 교육센터에서

by 미네 Feb 07. 2025


 안녕하세요? 모두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여전히 눈이 살짝 오는 이스탄불에 있습니다. 연말에 다시 아프곤, 건강이 정말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자각했지만 운동은 안 하고, 남은 이스탄불 생활에서 할 수 있는 공부를 찾고 있는데요. 운동 말고 결국 공부를 찾다니 저는 운동이 정말 싫은가 봅니다. 아하하

 어쩌면 곧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이 백수 엄마는 진로 고민이 상당합니다. 나이가 이 만큼 먹어도 신년에 앞으로의 공부계획을 생각하니 아들이 물어봅니다.


 "엄마는 공부가 재밌어?"

 "아니. 그럼 넌 재밌냐?"

 "아니, 그런데 엄마는 그럼 왜 해?"

 "그냥 그렇지. 그런데 잘하고 싶어."


 이번 주에 이스탄불 시슬리에 있는 교육기관에서 영어 시험을 봤습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오랜만에 긴장한 느낌을 느꼈습니다.

 스물한 살의 대학생 제이넵, 쉰 살에 이민을 준비하는 불칸, 나를 그저 '야반지(외국인)'라고 부르던 아저씨까지. 필기시험이 끝인 줄 알았는데 문자로 구술시험을 보러 오라고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들을 등교시키곤 버스를 타고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시험장에 도착하니 외국인은 역시 저 혼자입니다.


 구술시험 전에 그들은 시험 워밍업이라며 영어로 저에게 이스탄불 살이에 대해 물어봅니다. 국보다 아이들에게 친절하다고 따뜻하다는 말에, 그건 네가 외국인이라서 그동안 배려를 받아서 그런 것이라며, 우리끼리는 아주 살벌하며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는 불칸 아저씨말. 


 제가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화기애애했던 수다가 지나고 호명이 되어 시험장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분명 시험장 입구 앞에선 웃으며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시험장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이 말할 선수를 잡기 위해 저의 기회를 빼앗아갑니다.

 나이 마흔에 오랜만에 겪는 치열한 경쟁 분위기. 교육기관에 무료 교육대상으로 선발되기 위해서 시험장에서의 그들의 태도 변화가 당연한 것인데도 사실 흠칫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편하게 시험에 임하던 저도 그들에게 질세라 폭풍으로 영어를 쏟아냈습니다.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많아진 것은 불과 년 아니 이십 년도 되지 않았다며, 한국인 야반지인 외국인, 너는 좋은 시절에 이곳에 왔다고 그들은 이야기합니다. 너는 그동안 많은 배려받았다고 내게 이야기합니다.


 네가 아는 것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며 소리치며 말하고 싶었지만, 지난 시간 동안 이스탄불에서 그저 제게 가장 좋았던, 감사했던 순간만을 천천히 말합니다. 그래도 착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잘 살아왔다고 차분히 인터뷰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곤 별 다른 일이 없는 사람처럼 X레이 검문을 거쳐 쇼핑몰로 들어갑니다. 4년 전과 달리, 배로 올라버린 아들의 교복값을 보고 아들의 학교 교복과 비슷하지만 저렴한 바지를 쇼핑몰에서 골라봅니다. 할인하는 바지를 보고 신이 나서 계산을 한 후, 가방에 옷을 넣곤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올라탑니다. 

 불쑥 올라오는 서러움. 화가 쏟구칩니다. 내가 무슨 배려를 너한테 공짜로 그리 받았나. 한참 버스 안에 앉아 멍하니 이스탄불 풍경을 바라봅니다.



 

 오늘, 이스탄불에 눈이 왔습니다. 평소처럼, 아들을 깨우고 조심히 걸어 시떼의 입구에서 아들이 탈 버스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버스가 돌아설 때까지 아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신나게 흔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웃습니다. 그리고 이불을 털고 아침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립니다. 휴대폰에 문자 소리가 납니다.


 참가자 여러분, 영어 프로그램 면접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2월 10일 오전 9시에 시작됩니다. 참고사항: 신분증 사본을 잊지 마세요.


 생각해 보니 인터뷰 때 조금 더 솔직해질 걸 그랬습니다.

나도 너희처럼 길이 참 미끄럽다고, 불평을 너저분하게 늘어놓고 그래도 나는 정말 열심히 걸어왔다고 말할 걸 그랬습니다. 그래도 이 삶을 잘하고 싶어서, 행복하고 싶어서 매일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한다고 그 말을 할 걸 그랬습니다.


 다음엔 조금 더 솔직해져야겠습니다.


튀르키예 옷가게 ,LC WAIKKI 가 강해지랍니다.아하하
제 나이가 마흔이라니, 다들 여전히 놀라는 이스탄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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