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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통의 편지들

4년 동안 이스탄불 국제학교에서 한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by 미네

튀르키예에 온 지 어느새 1300여 일이 지났다. 이제는 이곳을 떠날 일이 얼마 남지 않아, 마치 곧 끝날 삶을 정리하는 사람처럼 하나씩 버리고 나누기를 시작했다.

늘 비우는 삶을 살자고 명심하지만, 막상 떠난다는 생각에 옷장을 정리하니 참으로 비울 게 많았다. 자식을 낳곤 나와 달리 나날이 성장하는 아들을 보며 철마다 옷을 이렇게 사고 정리해야 하나 하고 한편으론 반가우면서도 셋을 키운 엄마는 얼마나 바빴을지를 깨닫는다.


한참을 작아진 아들의 옷을 바라보다, 이스탄불에 올 때만 해도 롱코트였던 그의 바람막이 재킷을 보며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를 실감했다.


사실, 중간에 끼인 둘째로 사느라 늘 언니의 옷을 물려받았기에, 내 나이 사춘기 즈음엔 나는 빨리 크고 싶었다. 우유도 하루에 500ml를 꿀꺽꿀꺽, 새 옷을 입고 싶은 욕망이 성장을 만들었다고 할까.


결국, 나는 어느 순간 언니보다 훨씬 커졌다. 아하하.


4년의 세월이 지나고, 아들의 학교에 이제는 참깨는 없다. 국제학교 엄마로서 내가 살아온 이스탄불의 삶을 모르는 어떤 외국 엄마는 나를 엄청나게 부유하고 대단한 집안의 여자로 봤고, 때론 돈을 써서 이것들을 해냈다는 오해도 받았다.

사실, 교복도 정품으로 안 사고 비슷한 상품으로 사서 입히고 학교로 보내건만 이곳에 살면서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방식, 그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본다.


야사 속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가 있다.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보고 장난 삼아 "내 눈에는 대사가 돼지처럼 보이는구려."라고 놀리자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소승은 전하가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성계가 "허허, 나는 대사를 돼지라고 했는데 대사는 왜 나를 부처님처럼 보인다고 하는 것이오?"라고 묻자 무학대사는 "돼지 눈에는 돼지처럼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처럼 보이는 법이지요"(猪眼觀之卽猪 佛眼觀之卽佛)라고 받아쳐 이성계가 크게 웃었다고 한다.


이 상황을 이스탄불 속에서 너무 많이 느꼈다는 것이다. 아하하.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일상과 생각으로 삶을 살고 있어도, 자신의 고정관념, 그 시선으로 무언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고정관념 속에 살지 못하고, 나의 모습을 온전히 그대로 드러내며 이스탄불에서 살아왔다. 내 나름대로 너무나 충실하게 열심히 살았다. 오늘로 드디어 학교의 그녀에 보내는 106번째의 편지, 보내자마자 답장이 왔다. 그녀는 내일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 내일 아침 우린 마치 오랜 시간 아이들을 위해 함께 일한 학교 동료처럼 서로를 향해 말할 것이다.


"안녕!"

"안녕! 커피 먹을래?"


106통의 나의 편지가 그녀에게 행복했길, 그래도 늘 내게 때론 화나게, 웃게, 감사하게 답장을 해주었던 그녀가 그리워질 것 같다. 내일도 그녀의 만담을 들어주려면 기운이 빠지겠지만, 그녀는 늘 내게, 학생들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보고 싶을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참고문헌

나무위키. 태조(조선)/여담. 2025.05.02.0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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