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해외에 4년 살아보니 어땠어요?
남편은 얼마 전 한국에 있는 내게 사진을 보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 사진, 그에겐 가장 중요한 마지막 여정인 듯, 자신의 자리에 오는 후임을 만나러 독일로 간다.
보슬비가 내리는 이스탄불 공항의 비행기 사진을 보며 나는 남편의 감정을 추측한다. 아마 그는 굉장히 시원하면서도 섭섭할 것이다. 나와 아들이 이미 한국에 와 있고 이삿짐을 부쳤지만, 그는 아직 이스탄불을 떠난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타국이었던 땅이 익숙해져 갔다. 잠시 머무는 곳인 줄 알고 있었지만 돌아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4년이란 시간은 어쩌면 길다.
남편 없이 이삿짐이 올 집에 도배를 계약하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4년 전 알던 이웃이 내게 말을 걸었다.
"이제 돌아오세요?"
"네, 4년 만에 오네요."
"와! 금방이다."
"원래 남의 군대는 짧게 느껴져요."
사실 이스탄불의 삶은 가끔 휴가 없는 군대생활 같았다.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나름의 방법을 찾은 것이 튀르키예어 공부, PTA활동이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예전처럼 도망갔을 텐데. 아하하.
자식이 있어서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잘 살아갔다.
떠날 때, 나와 비슷한 시기에 떠나는 친한 외국인 엄마들과 이별을 앞두고 긴 수다를 나눴다. 이야기 속에서 결국 이건 어느 한국 아줌마들 대화나 다름이 없다. 그 어느 집이 어떠하고 누구네집은 어떠하고 그 집에 아빠가 무슨 일을 하시고 줄줄 읊어대는 외국 아줌마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앞으로 옮겨가는 나라의 입시상황과 튀르키예에서 진학이 가능한 유명 중등학교 상황, 초등 과정이 끝나고 실시되는 중등 입학시험을 잘 대비하는 사립학교 정보들. 곧 한국으로 돌아갈 나로선 정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특급정보다. 아하하.
내가 그 자리에 앉아서 있을 이유는 우리 아들과 그 외국인 엄마 아들이 참으로 친한 것뿐, 사실 곧 한국으로 돌아갈 내가 흥미 있을 이야기가 그곳에 하나도 없었다. 아들들은 엄마들의 수다 옆에서 땡볕을 맞으며 땅을 파고 있었다. 내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되묻는데, 미안하다며 딴생각을 해서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고 말했다. 갑자기 머쓱해진다. 아하하.
그렇고 그런 마지막 날, 나의 모습이었다.
지난여름의 이스탄불은 참으로 모질게 더웠으니 어쩌면 나는 그때 내 정신을 놓고 있었나 보다. 나의 마음과 달리 4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아이들은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수영 한 판을 신나게 하곤,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싱거운 영어식 말장난을 했다.
한국에 와서 나는 이런저런 서류를 아직 관공서에 발급한다. 남편 없이 이삿짐 없이 아이를 데리고 온전히 살아가는 삶은 쉽지 않다. 아들이 학교에 잘 다니고 건강하다는 것이 감사하고 기쁠 뿐이다. 그런 내게, 사람들은 아직 이 질문을 한다.
"너무 멋져요. 외국 살아보니 어때요?"
"음, 제가 분명 기회가 오면 꼭 가시라고 말할 텐데 여기보다 더 편하다고는 말을 못 합니다. 아하하."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다시 가라면 가겠는가. 이런저런 일이 몰아치던 이스탄불에서의 시작들, 남편과 나 단 둘이었다면, 어쩌면 더 쉽게 이스탄불을 떠났을지 모른다. 그리곤 속 깊게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4년 전 머물고 있던 한국도 무척 싫었다. 마치 도망치듯 찾았던 대안이 해외살이였던 것 같다. 그리곤 결국, 또 다른 색으로 나를 힘들게 했던, 그곳에서 아들이 있어 다시 4년을 잘 살아냈다.
남편도 없고, 짐도 없고, 차도 없는 일상. 아들은 버스를 타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다시 아무것도 없는 한국에서 하나씩 만들고 차례를 세운다. 캐리어를 싣고 아들과 단둘이서 서울여행도 무탈히 다녀왔다. KTX를 타고 다시 서울 시내버스를 타고, 추석 명절 서울 사람들이 떠난 서울에서 이스탄불에서처럼 아들과 여행을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서울에서 지난 이스탄불의 기억을 아들과 나눈다.
잠시 머무는 삶, 한국에 돌아온 지금의 삶의 모습도 어쩌면 영원하지 않다. 마흔 즈음, 주변의 경치가 마음에 따라 온전히 달라진 것을 느끼는 나를 보고, 삼십 년 지기 친구는 내게 너 군대 다녀왔냐고 되물었다. 큰 웃음이 난다.
이스탄불의 긴 방학 속에서 아들과 자주 보던 유튜브 채널을 한국에서 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여기 모두 적어놨네하고 웃어본다.
"나도 다녀왔는데, 너도 잘하지 뭘. 그 모든 게 잠시였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재밌게 보내."
https://youtu.be/IcTtEQpMHlc?si=uxYqwqe0UiyRKMF1
미키피디아 유투브 채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