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이 길었다. 잠에서 깨니 어제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가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7시 반까지 체력검정을 가야 했다. 이대로 비가 계속되면 체력검정도 취소되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평소보다 이른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레토나에 탑승했을 때는 막 7시 15분이 지나고 있었다. 체력검정이 실시되는 장소까지 안정적으로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운전병이 출발 보고와 함께 엑셀을 밟았을 때 검정 취소라는 연락이 왔다. 위병소까지 가는 내리막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차를 돌려세웠다. 황당했다. 또 누군가 날씨 트집을 잡으며 한 마디 던진 탓에 계획이 뒤집어졌겠구나 추측하고, 아침을 먹고 나오자 거짓말 같이 비가 그쳐 있는 하늘을 보며, 뭐든 우천으로 취소되고 나면 날이 개니 이 정도면 과학이라고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다시 사무실로 갔다. 그 사이에 출근한 과장이 아침에 인접대대에서 인명 사고가 났다고 했다. 전입한 지 2주된 이등병이 화장실에서 목을 맸단다. 오늘 체력검정은 그래서 황급히 취소된 거라고.
군에 들어와 자살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생각했지만 적어도 가까운 부대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 십 년 전께 예하대대에서 자살한 하사의 부모가 7년이 지나 장례식을 치러야겠다며 연락을 해 부랴부랴 영결식을 준비했던 경험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죽음이 남긴 긴 꼬리를 만져본 일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조직 안에서 어떤 순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버리는 사건과 동시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자살 사고란 건 그런 것이었다. 우왕좌왕 분주하기만 하던 부대에 누군가 큰 소리로 얼음을 외치자 나도 모르게 몸을 낮추게 되는 것.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오늘 새벽 세상을 등진 그 사람이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목을 매기까지 어떤 고통 속에 있었을지, 가늠할 수 없는 그 무게에 마음이 저렸다. 그리고 보급관의 말처럼, 한 생명을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죄인처럼 느끼고 있을, 그 부대 사람들의 처참한 내면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 먹먹해졌다. 우리는 잘못한 것 없이 죽고, 잘못한 것 없이 남겨진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부조리한 세계에 내버려진 존재다.
자살이 결코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는 건 그 사고를 대하는 조직의 반응이 증명한다. 나는 자살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감수하기 위해 사건의 전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보다 그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더 쉽게 보아왔다. 군을 비롯한 이 사회의 많은 조직이 그랬다. CJ E&M이 그랬고, 쌍용차가 그랬고, 삼성이 그랬다. 이들은 모두 자살이 사회적/구조적 문제라는 걸 알기에, 그것을 가리기 위한 불투명한 장막을 치고자 늘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퇴근이 가까워질 무렵, 사회적 타살로서의 자살이 성립하게 하는 어떤 순간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의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과장은 결재 올라온 공문 하나를 읽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여튼 군에 동성애자들, 별 이상한 애들이 많아." 그러자 그 공문을 올린 다른 간부가 한술 더 뜨며 "과장님, 동성애자보다도 양성애가 더 심각하답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가끔 누구 지나갈 때 근육 만지고 그런 것도 하지 말아야 되는 건가?"라고 답했다. 두 사람 사이에 앉아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그저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업무에 깊이 열중한 나머지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 간부의 마지막 물음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나는 정말 거기에 털끝만큼의 반응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짧은 말들이, 정말 1분도 안 되는 그 순간에 오간 서너 개의 문장이 나를 흙바닥에 처넣고 짓밟을 수 있음에 놀랐다. 그 놀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못 들은 척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뜬금없이 그들의 대화에 발끈하는 것도, 혹은 상상만 해도 역겨운 동조의 리액션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잠자코 있는 것. 나의 존재가 부정 당하는 영원 같은 시간을 참고 견딤으로써 이 세계의 구역질나는 구간을 어떻게든 유유히 빠져나가고 지나치는 것이었다. 만일 자살이 그러한 통과의 한 가지 방법이라면 과연 이 명백한 타살에 누가 결백을 주장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2017년 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