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M의 집에서 잤던 날에는 악몽을 꿨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갑자기 그와 떨어져 만나지 못하게 되는, 뜬금없는 꿈이었다. 인상을 가득 쓰며 몸을 부르르 떨고 일어나 옆에 누운 그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 현실감각을 되찾았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고작 세 번 만났는데, 이렇게나 이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었다니,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왠지 서글퍼졌다. 잃고 싶지 않은 걸 생각할 때 배경처럼 마음에 드리워지는 슬픔이었다.
오늘은 다행히 그런 악몽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다른 의미에서 끔찍한 시나리오의 꿈을 꿨는데, 내가 준비도 없이 엄마에게 무턱대고 커밍아웃을 하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반응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어딘가 굉장히 어색하고 촌스러운 대사였던 것 같다)을 내뱉고 꿈 속의 나는 무척이나 후회하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고 있을 때, 서서히 꿈의 세계가 부서지고 현실에 대한 자각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눈을 뜨자 M이 곁에 있었다. 나는 그의 품으로 다가가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가 신청한 신용카드가 배달되길 기다렸다가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조금 걸어나가니 작은 상가단지가 나왔고 우린 메뉴를 조금 고민하다 손님이 뜸한 닭갈비 집에 들어갔다. 닭갈비와 막국수를 같이 시키고 싶었지만 1인분 주문이 안 된다는 말에 막국수만 두 그릇 먹었는데, 그리 나쁘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맛있지도 않은 무난한 식사였다. 그는 식당을 나오며 점심을 다시 먹고 싶어했다.
둘이 얘기하다가 탁구를 치러 가자는 말이 나와서 가까운 탁구장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는 작은 하천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단정하고 조용한 공원을 같이 걸었는데, 구름 없는 푸른 하늘과 선선한 바람, 교외의 차분한 공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산책길이었다. 나이가 들어 이런 곳에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가 데려간 탁구장은 아주머니 회원 서너 명이 열정적으로 주말을 보내고 있는 작고 깔끔한 곳이었다. 그가 어머니와 자주 탁구를 치고 번번이 진다는 말을 들었기에 나 정도 실력은 가뿐히 밟을 정도로 기본은 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날린 첫 서브를 놓쳤고 이후로도 라켓을 몹시 못 다루는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 둘은 게임 내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그는 민망함에, 원래 1시간 정도 치려던 게임을 30분만에 끝내고 나왔다.
그의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HIV 검사 얘기가 나왔다. 우리는 서로를 어느 정도 믿고 있었지만 만약에 대한 우려는 있었고, 마음 한구석에서 걱정되는 부분을 확실히 하고 싶어했다. 검사 일정을 검색해보니 우연히도 오늘 밤 종로에서 종합 검진을 해준다는 공지가 있었다. 그는 보균과 감염이 다르다는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어서 모든 종류의 검사가 가능하다는 종합을 꼭 가고 싶어했다.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너무 즉흥적인 결정이라 조금 망설였지만 그가 무척이나 바라는 것 같아 귀가를 늦추고 따라가기로 했다.
종로까지 한번에 가는 광역버스가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버스를 놓친 우리는 전철을 탔다. 그는 최대한 지하철을 안 타고 싶어서 버스와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자는 말도 안 되는 의견을 냈지만 환승최소론자였던 내게 굴복했다. 그는 1호선이 더러 냄새가 나고 앉을 자리도 없어 싫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탄 차량은 사람이 적어 쾌적했고 자리도 금방 생겨 앉아 갈 수 있었다.
기분탓이었겠지만 종로에 내리자 묘한 공기가 우리를 둘러싸는 게 느껴졌다. 게이다를 활성화하는 동네 특유의 분위기였다. 더구나 옆에 남자친구를 두고 걸으니 종로 거리를 활보하는 게이들의 존재감과 시선이 더욱 도드라지는 듯했다. 그는 종로에 스트레잇이 너무 많아졌다고 불평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이곳이 해방구처럼 보였다. 우리는 맛은 괜찮았지만 가격이 별로였던 익선동의 어느 고깃집에서 삼겹살로 허기를 채우고 검사가 시작되는 9시까지 시간을 때울 겸 인사동~피맛골로 이어지는 거리를 잠깐 걸었다. 노년 인구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탑골 공원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나는 그에게 중장년이 되어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은지 물었다. 그는 만일 그때 파트너가 없다면 친구도 없이 혼자 조용히 여생을 살며 일하다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가 나이 들어 함께 하는 삶을 상상해봤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물론 나 자신조차도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종로를 한 바퀴 돌고도 시간이 남아 우리는 검사 장소로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목적지는 어떤 주점의 1층이었는데, 그가 이끄는대로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들어가보니 이쪽 업소들이 몰려있는 좁은 길이 나왔다. 지나면서 보이는 주점과 그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남자, 정확히는 게이들인 구역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나는 신세계를 보는 기분이었다. 검사 장소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예고된 시작 시간을 30분 남겨놓고 이미 검사가 진행 중이었다. 친절한 직원들이 길목 초입에서부터 콘돔과 젤 세트를 나눠주며 검사를 홍보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우리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으러 와 있었다. 대개가 젊은 사람들이었고 아주 평범해보이는 남자들이었다. 우리는 쭈뼛쭈뼛 소변 받는 줄에 섰고 곧이어 채혈도 했다. 나를 채혈하신 분은 무뚝뚝하지만 세심하게 반창고를 붙어주시며 검사결과를 확인하는 방법을 일러주셨다. 검사는 철저히 익명으로 치러졌고 3일 뒤에 센터에 전화를 걸어 지급받은 번호를 말하면 결과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검사 때문에 저녁을 먹으면서도 술을 마시지 못했던 우리는 그 골목에서 적당히 목을 축일 곳을 찾았다. 그가 골목 안쪽에 숨겨진 가라오케 바를 찾아가봤지만 아직 영업시간이 아니라고 해서 도로 나왔다. 또 다른 포차는 9시도 안 되었지만 모임을 하는 여러 무리의 남자들로 만석이었다. 우리는 아쉬운대로 조금 외진 건물에 위치한 술집에 들어갔다. 밖에서 보기엔 조용해 보였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토요일 저녁답게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주와 적당한 안주를 시켰다. 하지만 내가 일찍 들어가야 해서 급하게 한 병을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주말에는 재밌게 놀자고 약속하며...
M은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약간 취한 듯 나에게 조금 들이대는 행동을 했는데 나는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며 그런 그를 애써 밀어냈다. 내가 먼저 역에 내리기 전, 그에게 작은 소리로 '철벽 쳐서 미안해'라고 말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 사랑을 자신 있게 드러내고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과 그 현실에 균열을 낼 용기가 없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집까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피곤하면서도 후회스럽게 터벅였던 것 같다.
- 2017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