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제도적 자제' 개념을 읽으며
하버드 정치학 교수인 '스티브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통해 건강한 민주주의가 오랜 기간 유지되기 위해서는 법 시스템 외에도 '성문화 되지 않은 두 가지 규범'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식하는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이다.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규범이다. 정권을 잃으면, 말 그대로 본인과 가족의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던 왕정이나 독재 체제와는 달리, 민주주의는 선거 등을 통해 승부가 일단락되더라도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 있다. 승리만큼이나, 민주주의라는 게임 자체가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두 번째 규범은 조금 낯설다. 제도적으로 용인된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forbearance가 그것이다. '제도적 자제'로 해석되는 이 덕목은 명시적으로 합법적인 행동(혹은 명시적으로 금지되지 않은 행동)이더라도,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여 절제하는 태도를 뜻한다. 이 규범이 중요한 이유 역시 첫 번째 규범 사례와 같다. 제도적 자제가 증발한다면, 상대방도 후에 극단적인 전술을 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책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시를 통해 '제도적 자제'를 보다 명료하게 설명한다. 미국 법은 대통령이 친족을 내각이나 정부 기관 요직에 임명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단지 엄격한 공사 구분을 위해 오랫동안 불문율로 지켜져 왔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를 고위급 자문으로 임명한 것은 엄밀히 말해 합법이다. 그럼에도 이는 제도적 자제를 어긴 사례에 해당된다. 후임 대통령이 쉽게 유혹될 만한 나쁜 선례가 남는 것이다.
작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추어 읽은 이유는, 지난주에 실시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문이다. 작년 12월, 선거법 개정을 통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 정당 지지율 대비 많은 의석을 가진다고 평가받는 두 거대 정당의 의석을 조금 줄이는 대신, 여러 군소 정당의 원내 진입을 통해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 그 취지였다.
다만, 당시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이 법안에 동의하지 않았고, 법안이 개정되는 대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현 미래한국당)을 만들 것을 천명했다. 이는 법적으로 금지된 행동은 아니었으나, 법안의 취지를 살피지 않은 행동이었다. 시사인 천관율 기자는 기사 <자유한국당이 한국 정치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20.01.06)>를 통해 이러한 제1야당의 행동을 '우물에 독 타기'라는 표현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도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오염된 우물물(극단적 전략으로 인해 신뢰도가 훼손당한 선거제도)을 핑계 삼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위성정당(현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기 때문이다.
(* 아래 기사는 공평하게 자유한국당의 입장도 서술한다.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이기에 선거법 개정 자체 역시 합의 처리가 원칙(비명시적 규범)이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4+1 합의체는 제도적 자제를 발휘하지 않은 채 합법적으로 법안을 개정시켰다.)
결과적으로, 제21대 국회는 제20대 국회보다 양당 체제가 강화되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바라던 목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과로 끝맺음된 것이다. 제3 당부터 5당까지는 도합 12석만을 얻는 동안, 양 거대 정당들은 비례용 위성정당을 포함하여 의석의 94%를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이러니라면, 최초로 우물에 독을 풀었던 미래통합(+미래한국당)이 결과적으로 참패했다는 것이었다.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다시 펴 보자.
상호 관용의 규범이 허물어질 때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적 권력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정당이 서로를 위협적이 적으로 간주할 때 정치 갈등은 심해진다. (중략) 패배의 대가가 심각한 절망일 때 정치인들은 자제 규범을 포기하려는 유혹에 넘어간다. 헌법적 강경 태도는 관용의 규범을 허물어뜨림으로써 경쟁자가 위협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키운다. 그 결과 정치판에서 민주주의 가드레일이 사라진다. 정치학자 에릭 넬슨은 이러한 상황을 "합법적으로 극단적인 전술을 활용하는 악순환"이라고 묘사했다.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중
기존의 선거법 개정 취지였던, 다당제로의 여정은 1차 실패로 끝났다. 민주당과 통합당 덕택에, 현재의 선거법은 고의적 훼손, 즉 해킹에 취약하다는 것도 밝혀졌다. 기존의 협의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우선해야 할 것은 보다 해킹이 어렵도록 선거법을 손봐야 할 것이다. '개헌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가졌다는 여당'이 과연 초심을 기억할지 (다소 심술궂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보다 더 깊숙이 있다. 선거 제도를 아무리 꼼꼼히 고치더라도, 합법적이지만 극단적 전술은 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오히려 20대 국회가 증명한 것은, 제도와 더불어 높은 수준의 합의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어쩌면, 제도보다도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당은 보다 완전한 승리를 위해 위성정당이라는 극단적인 전술을 벤치마킹했다. 이 또한 일종의 선례가 될 것이다. 과연 21대 국회에서 다시금 소수 정당들을 위한 어려운 정치적 발걸음을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내심 이번에야말로 녹색당이 원내 진입하길 바랐던, 관전 초보자의 팬심이 이 글에 조금 담겼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