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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윤 Dec 30. 2022

건축작품공유 커뮤니티 아키필드

작품 공유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_ep01

     2010년 가천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당시 선배들은 건축학과 마감은 정말 힘들고 앞으로 건축학과를 선택한 걸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건축 설계 프로젝트의 마감을 하게 되었다. 마감 3일 전부터 연일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했다. 그때 밤을 새운 이유는 작업을 끝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재밌어서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잠이 오는지도 모르고 설계 작업에 전념했다. 그때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기억이 난다.

    그 첫 마감 결과물에 대해 기억을 짚어보면, 당시 배웠던 근대건축 5원칙이 그대로 적용된 마치 빌라사보아를 연상캐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빌라사보아 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 건축 디자인에 대한 레퍼런스가 아마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게 시험을 대신하는 것이라면 학생은 배운걸 써먹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인생 첫 프레젠테이션을 세분의 교수님 앞에서 하게 됐다. 이 의도를 그대로 말하면 되는데 밤을 새워서인지, 처음 하는 발표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앞에 서서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지 몰랐다. 거의 언어상실 수준으로 말을 제대로 못 했다. 스무살인 당시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 4학년 같기도 하면서 그런 일로 힘들어 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그냥 웃긴다.

2010년 1학년 당시 만들었던 모형

    첫 마감 발표가 처참히 끝나고 문득 다른 학교 학생들의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당시 살던 곳은 홍익대와 가까운 곳이었다. 그래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가 있는 와우관에 갑작스레 방문한 적이 있다. 역시나 1층 로비부터 학생들의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몇 층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모든 층을 계단으로 오르며 한 층 한 층마다 복도를 구경했다. 어떤 복도에는 마치 전투의 흔적처럼 우드락과 폼보드, 스프레이를 칠하기 위해 바닥을 보양해 두었던 비닐 포장지, 각종 모형 재료들과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양 옆에는 이 학교 학생들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결과물들이 있었다. 그 광경을 발견한 나는 마치 다른 행성에 도착해 외계인들의 흔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와 모형 만드는 방식, 표현 방법, 결과물의 퀄리티 등등 모든 게 달랐다. 그걸 만든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싶어 졌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2학년 1학기가 끝나던 무렵 굉장히 친분이 두텁던 선배가 건축학도들이 매주 모여서 발표하는 연합동아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 동아리의 이름은 아키텐이었다. 그곳에 합류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었고 무척 설레었다. 얼마 전 다른 학교에 무턱대고 방문했던 기억과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들 때문인지 그 기대감은 더욱 증폭됐었다. 덕분에 다른 학교 학생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고 아키텐에 큰 애착을 갖고 그곳의 친구들과 친분을 쌓았던 기억이 난다.


2012년 아키텐 회원들

    아키텐에서 1년간 활동하고 어느 순간부터 서울, 수도권에 한정된 모임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의 건축학도들이 자신의 작업을 온라인에 아카이브하고 자랑도 하고, 피드백도 교류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시에 알게 된 컴공 석사과정의 어떤 대학원생에게 웹사이트 개발을 의뢰하였다. 아무런 기획, 디자인, 개발 지식 없이 제로보드로 그냥 커뮤니티사이트처럼 만들었다. 오로지 건축학도끼리 작품을 아카이브 하고 교류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오픈 실적은 처참했다. 하루 방문자는 10명도 채 안 됐으며, 업로드 작품은 직접 인터뷰하거나 같은 학교 친했던 동기들이 우정으로 올려준 작품들 외엔 없었다. 그때 다른 건축 연합회인 UAUS에 찾아가 인터뷰를 하여 작품을 수집하기도 했고 여러 졸업전시회를 돌아다니며 다른 학교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업로드하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무언갈 만들어보고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다. 패배감이 굉장히 컸으며 이 사이트를 만들며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취지는 좋은데 누가 과연 거기에 프로젝트를 스스로 올릴까?"였다. 아마 지금이었으면 기획부터 잘못되었음을 인정했을 탠데, 당시에는 "왜 이런 좋은 취지의 서비스에 참여를 안 할까?", "디자인이 잘못되었나?", "홍보가 덜 되어서 그럴 거야."라는 등 계속해서 요점에서 어긋난 착오를 거듭할 뿐이었다.



2013년 3월에 오픈했던 아키필드 랜딩 페이지(좌) 아키텐에서 아키필드를 소개하는 상황 (우)


    그러던 중 친구가 모형 재료를 허락 없이 막 가져다 쓰는 모습을 보았다. 근데 그런 문화는 은연중에 있었다. 친한 설계실 친구들끼리는 그런 재료들을 쉐어 하는, 그 상황이 웃겨서 페이스북 아키필드 페이지에 업로드하였다.



지금 보니 굉장히 촌스럽지만 건축학도 밈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페북에 업로드되면서 많은 건축학도들의 관심을 끌며 소소한 공감거리, 웃음거리가 업로드되는 페이지로 방향을 잡게 된다. 그때부터 시리즈로 밈을 만들기 시작했다. 설계실에서 밤을 새우고 바닥에 뻗어서 자는 친구, 건축학도들만 알아볼 수 있는 모형 재료들을 마구잡이로 올리면서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밈 업로드 이후 페이지 인사이트 변화


페이지에 팔로워가 늘면서 급물살을 타긴 했지만 사실 큰 부담과 회의감에 빠졌었다. 이런 밈 같은 것을 계속 만들어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과 결국은 식어서 잊혀질 초조, 그리고 애초에 생각했던 방향과는 너무 다른 커뮤니티 컨셉에 대한 회의감 등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건축가의 사진, 건축물 사진을 아크데일리(archdaily.com)에서 퍼와 업로드하기도 했고, 당시 국내 건축계의 뜨거운 감자 였던 DDP를 업로드했을 때는 몇백 명이 넘는 건축인들이 댓글창에서 소규모 토론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돌이켜 보면 굉장히 들떠 있었던거 같다.

 이 페이스북 페이지의 어설픈 흥행이 훗날 더 크고 긴 기간 동안 시행착오의 늪으로 빠트릴 덫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이 커뮤니티를 뒤로한 채 돌연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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