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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윤 Dec 30. 2022

이상에 대한 고집

작품 공유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_ep02

    2015년 5월에 군대를 전역했다. 2년간 그곳에서 세 권의 빼곡한 아이디어 노트를 작성했고, 작품공유 서비스를 성공시키겠다는 크나 큰 꿈을 품고 전역했다. 그리고 군대 싸이버지식 정보방에서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알게 된 인연이 있었다.

 그는 디지트라는 건축 콘텐츠 연구소의 한기준 대표였다. 나보다 2학번 높았던 그는 홍익대 건축학과 소속이었고, 전역 이후 허구한 날 붙어 다녔다. 나는 항상 건축작품공유 사이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는  생각을 항상 지지해 주었다. 디지트는 라이노 강의를 무료로 유튜브에 배포하면서 유명해진 커뮤니티였다. 친분 관계가 두터워지고 아키필드는 디지트에서 하는 행사를 홍보해 주었고 디지트에서도 우리를 홍보해주고 인적 네트워크를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시너지를 내고자 했다. 디지트 대표와의 시너지로 금방 아키필드의 이름을 많은 건축계에 종사하는 분들께 알릴 수 있었고 반대로 디지트도 무료 강의 홍보를 하는데에 도움을 많이 얻었었다. 15년 2학기는  복학 학기였고, 학기를 마치자마자 본격적으로 작품공유 서비스인 아키필드 개발을 위해 휴학을 신청했다.  

건축학회지에 소개된 아키필드와 디지트


 본래의 계획이던 아키필드의 작품공유 서비스에 집착을 보이며 코딩을 독학하며 커뮤니티 개발을 지속했다. 코딩을 전공이 아닌 사람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활코딩이라는 사이트에서 php 기반의 코드이그나이터와 MySQL, apache, javaScript를 베이스로 하는 웹 애플리케이션 만들기라는 코스였다. 난생처음 코딩을 배워 보는 것이 즐거웠지만 원하는 퀄리티로 만들려면 꽤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에 당시 우리 학과에서 소프트웨어설계학과로 전과했던 동기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과에서 학점 수석이었고, 엄청 성실하고 똑똑했던 기억이 난다. 주저 없이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 친구의 이름은 송제인이다.


미래의 CTO와 학교 카페에서 첫 미팅을 가지다


처음에는 코드가 풀리지 않는다는 질문으로 시작하였지만 어느 순간 그 친구는 직접 웹사이트를 개발에 참여해 나는 자연스레 기획, 디자이너를 맡게 되었고 제인님은 프런트와 백엔드 개발을 풀스택으로 맡아서 하게 되었다. 이때의 기획은 페이스북과 핀터레스트가 뒤섞인 작품 아카이브 웹사이트였다.


당시 기획했던 아키필드 0.1v


사이트가 론칭되고 얼마 뒤 입대 전에 제로보드로 만들었던 웹사이트와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결국 그때의 시행착오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디자인을 예쁘게 하면 잘 될 거야.", "코딩을 직접 해서 UI 커스텀을 잘하면 많이 쓸 거야." 등의 착오를 반복한 것이다. 문제를 자꾸 뇌피셜로 찾아서 뇌피셜로 해결했기 때문에 진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겉돌기만 했다. 남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아닌 계속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에 집착한 결과이다. 이 회고록의 제목인 건축작품 공유 사이트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단어는 전반적으로 이 상황을 대표하는 대목이라 볼 수 있다. 당시 나를 걱정해서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선배도 많았는데 그 말을 애써 외면했던것 같다. 

    그럼에도 이 작품공유커뮤니티는 꼭 생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이용자 스스로 업로드하는 참여형이 아닌, 취재를 통해 작품을 아카이브 하는 것으로 변경 하였다. 그리고 아키필드를 없어지게 만든 사건 "작품공유문화 캠페인"이라는 것을 시도한다.


2016년 5월 론칭된 아키필드(archifeeld.net)의 랜딩페이지


    작품공유문화 캠페인은 2016년 5월부터 시작되었으며, 전국의 20여 개 대학의 건축학과 학생회와 협력하여 학생회 차원에서 학생들의 작품을 수집한 뒤, 아키필드에 학생회 계정을 만들어 매년 아카이빙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시행되었다. 그 캠페인에 참여한 대학 중 한 학생이 "본인은 이 캠페인에 작품 공유를 수락한 적이 없다."는 댓글로 시작해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지기 시작했다. 파장은 꽤 컸으며, 다른 학교의 학생도 "나도 그렇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리게 되면서 많은 이들로 하여금 비판과 비난이 거세졌다.

    그럼에도 "우리 건축계에 이런 시도를 한 단체나 조직이 없었으며 심지어 자신들과 같은 학생이 운영하는 곳이니 한 번의 실수는 용서해 주자."는 여론과, "이런 작은 조직이 나중에 문제 해결 없이 성장하게 되면 결국 같은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는 여론이 형성되어 댓글창은 또다시 토론의 장이 되었다. 사건 발생 이후로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채 댓글에 답변을 달다가 결국 장문의 반성문과 함께 서비스를 내리게 되었다. 만 24세였던 나로서는 조금은 힘든 시기였던것 같다. 

    소주를 밤새 마시다 잠들었다. 나는 데스크 밑에 쓰러져 있었고, 눈 앞에 소주병은 대굴대굴 굴러다니면서 소주를 뚝뚝 흘리고 있던 장면이 기억난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결심을 내렸다.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서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 올것을 다짐하며 서비스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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