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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윤 Dec 30. 2022

시행착오의 늪

작품 공유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_ep05

    얼마 지나지 않아 필디스터디 강의가 실제로 열렸다. 강의는 성공적으로 마쳤고 평점은 5점 만점에 4.9를 기록하며 만족도도 꽤나 높았다. 내 생각이 뭔가 적중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약간의 기고만장한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이런 강의를 할 수 있는 실력 있는 건축학도나 실무자 분들을 수소문하여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 이후 강의 코스는 1개에서 5개로 늘어나면서 이전보다는 조금은 나은 서비스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필디스터디 첫 스터디, 고재협 선배가 첫 스터디리더였다.


    필디스터디는 필디라는 작품 공유 서비스에 활동하는 유저 중 실력자들이 작품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학원이나 학교에서 배우기 어려운 표현법이나 노하우들을 학생이거나, 또는 한 단계 앞에 있는 분들에게 시중보다저렴하게 배울 수 있으며, 실전 적용이 가능한 실무 위주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브랜딩 했다. 

    당시 수익구조는 필디스터디 매출의 일부를 수수료로 수익을 남겼고, 이 수익으로 월세와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필디스터디 현장

이때부터 창업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스타트업 씬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어 졌고, 교보문고에서 창업 서적을 뒤적이던 중 권도균 대표님의 경영수업 책을 발견해 정독했다. 덕분에 생소했던 "스타트업"이라는 용어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 처음으로 DCamp에서 주최한 데모데이에 참여하여 발표를 하게 된다. 굉장히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 같다. 당시 같이 발표했던 기억에 남는 팀은 국내 원탑 온라인 교육 플랫폼인 클래스101이라는 팀이었다. 

(그래도 용기는 가상했다. )

2018년 5월 D.Camp Demoday에서

    이때 발표했던 사업 내용은 작품공유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실무 교육 서비스였다. 그런데 심사위원분들은 "한 가지만 정해서 해야 할 것 같다.", "시장이 매우 좁다." 등의 평가를 내어주었다. 이때 아마 5개 발표 팀 중 가장 최하위 성적을 기록했던 것 같다.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만들고 싶은 이상향에 빠져 있던 것이다. 큰 패배감에 빠졌던 날이다. 그래도 IR(투자 유치 활동)은 그만두지 않았다. 여러 투자사의 심사역 분들로부터 피드백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시장 규모", "스케일업", "리텐션 비율", "확장성" 등에 관련한 내용들이었다.

    좀 더 빨랐으면 좋았겠지만, 무언가 단단히 근본부터 잘못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게 내 고집 때문인 것을 알면서도 실패를 제대로 직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작품공유 서비스라는 것을 버리지 못한 채 일이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2019년이 되었다. 피드백받았던 내용들을 토대로 여러 시도를 했다. 필디스터디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온라인화 하여 멀리 있는 학생들도 수강할 수 있게 했다. 필디 커뮤니티 기반 랜더링 디자이너 용역 매칭 서비스인 "필디소싱"을 운영 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수포로 돌아갔고, 긴 암흑기기 시작됐다. 이때는 어떤 투자사나 고객을 만나도 거절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자존감이 극도로 낮아졌으며, 어차피 뭘 해도 안되니까 이것저것 다해보자는 마인드였다.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2020년이 밝았고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필디스터디 오프라인 교육 서비스는 결국 내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원래 강사로 참여하고 있던 김석현, 이건엽 스터디리더(강사)분이 이 서비스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만들어 다시 살려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당시에는 빚도 있어서 더 이상 필디를 이어나가지 못하게 된 상황이었는데, 두 분의 등장으로 일단 연명을 하게 되었다.


네이버 스토어팜에서 판매를 시작한 필디스터디 VOD(2020)


온라인 강의 플랫폼으로 재탄생한 필디스터디(2021)


실제로 2020년이 오고 나서부터는 대출 빚 때문에 필디 관련된 일에 아예 못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필디스터디도 없어졌고, 이렇다 할 돈 벌 구석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죽으란 법도 없었는지, 고맙게도 평소에 친분 관계를 유지하던 대표님의 권유서울시의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 당시 만들었던 포스터들

    그렇게 가장 힘든 한 해를 어렵게 버티고 2021년이 온다. 이때 빚을 어느 정도 청산하고 다시 필디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시작하면서 필디2.0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작품 공유에 초점을 맞춘것이 아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업로드하면 이미지 위에 그리기나 텍스트를 정확한 위치에 기록해 소통하는 앱이다. 이 기획은 설계사무소 등에서 피드백을 주고받거나, 대학에서 교수님이 학생 작품을 피드백하는 용도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였다.

    이 기획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 아키필드때부터 함께했던 제인님에게 다시 연락했다. 이번에는 이것으로 투자를 꼭 유치하여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들어 보자는 당찬 포부를 밝히면서 제인님은 소엽님과 함께 파트타임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도 거듭되는 거절과 불안함으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고, 공황장애라는 병도 앓게 되었다. 상상치도 못한 끔찍한 병이었다. 그런 정신관련된 질환을 평소에 믿지도 않았으며 나에게 올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코로나도 확진되었다. 열이 39~40도를 웃돌며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죽음에 대한 실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코로나에 걸려서 음압 병동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에도 비대면으로 IR을 했다.

    2021년 3월부터 10월 사이 100여 군데 넘는 AC와 VC에게 콜드메일을 보냈으며 10여차례 미팅을 가졌고 전부 거절되었다. 거절 이유는 "시장이 좁다" 였다. 결국 같은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때도 건축, 디자인 분야에 국한되어서 고집을 부렸던 것 같다. 그리고 Dohe International이라는 싱가폴에 기반을 두고 있는 엑셀러레이터에서 연락이 왔다. 



필디 2.0의 온-이미지 피드백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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