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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맨 Aug 31. 2021

이거 다 써도 되요?

독해력 부족과 소심함이 가져온 피식 웃게 만드는 소소한 이야기

수영구에서 19세 이상에게 재난지원금을 준단다.   


집사람이 아파트 창문 밖을 보면서 "저기 행복복지센터가 보이네." 하고 말한다.

"어디? 안 보이는데."

"저기 노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 안 보이나? 광남초등학교 옆에. 오늘 자기가 가서 받아온나."

 

복지센터로 가는 길은 예전에 살았던 곳이라 익숙하다. 광남초등학교를 지나니 바닥에 청테이프로 기다리는 줄이 표시되어 있고, 다행히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날 것 같다. 


"이름이 없는데요? 집이 어디예요? 우리 센터 관할이 아닌 것 같은데요?" 직원이 신분증을 받고 컴퓨터에 조회해보더니 하는 말이다.


그때에 퍼뜩 생각이 났다. 두어 달 전 새로 이사한 후 전입신고할 때 갔던 그 복지센터는 여기가 아니었지.

의아해하던 직원에게 신분증을 건네받고 남천1동 복지센터로 향한다. 땡볕을 걷는다. 점점 뜨거워진다. 그러다가 스멀스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가르쳐 주려면 제대로 가르쳐 줘야지. 엉뚱한 곳을 가르쳐 주어 이 고생을 하게 만들어.' 마음속으로 집사람을 욕한다.   



그러자 마음 한쪽에선 결이 다른 소리가 들린다. '그건 아니지. 그건 바로 니 잘못이지. 어디 다른 사람을 탓하고 있어! 전에 이미 들렀던 관할 복지 센터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남 탓하면 안 되지.  


'그래, 그래. 됐다. 내가 바보다. 바보!' 하고 마음속을 소리친다.
 

'아니, 아니야. 이렇게 더 걷게 된 건 오히려 잘 된 일이야. 그렇지 않아도 게으름에 코로나가 겹치는 바람에 항상 운동 부족이었는데, 한 걸음이라도 더 걷는 건 좋은 일이지. 어쨌든 나쁠 것은 없어.'


그렇게 멀지도 않은 남천1동 행복복지센터에 도착해서 신분증을 건네준다. 직원이 컴퓨터로 확인한 후 재난 지원금 카드를 석 장 건네준다. 석 장?! 순간 의아했다. 두 장이 아니라 세 장? 내 것과 집사람 것, 이렇게 두 장 받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석 장이라니? 지원금 카드는 19세 이상 주민들에게 주는 것이고, 딸아이는 아직 만 19세가 되지 않았는데, 그런데 석 장! 기분이 좋다.


센터를 나와서 2-3분 걸었을까,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직원이 잘못 처리한 걸까? 분명 두 장인데, 딸아이는 아닌데. 점점 마음이 불편해진다. 돌아가서 다시 확인하자니, 뭔가 내키지 않는 게, 혹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한 장을 회수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 반, 괜찮다고 할 리 없으나 혹 괜찮다고 하면 헛걸음이라는 생각 반. 마음이 엎치락뒤치락거리는 동안 점점 센터는 멀어지고, 확인하러 돌아갈 마음도 멀어지고 있었다. 석 장 받을 때 막바로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평생 나의 천성적 병폐로 인한 일이다. 언제나 일이 벌어지고 난 후 가만히 생각하면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더 명확해지는 이 병폐. 그리고 순간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버리는 얄팍한 마음. 또한 소심해서 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새 가슴.   


그러면 전화로 확인해 볼까? 혹 그 직원이 실수로 카드를 한 장 더 준 것이라면, 이 전화로 인해 그 직원이 잘못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그가 불이익이라도 받게 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살짝 들었지만, 그래도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카카오 맵에서 남천1동 행복복지센터를 찾아서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횡단보도 신호등 아래 섰다. 신호음이 간다. 직원이 전화를 받는다.  

"남천1동 행복복지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보세요, 다름이 아니라 방금 재난 지원금 카드를 석 장 받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에 세 사람이 있는데 우리 딸애는 지금 고등학교 학생이거든요. 그래서 이 카드를 다 써도 되나 싶어서요."


집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공고문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본다.


지급대상: 현재 수영구에 주민 등록된 구민

신청자격: 세대주 또는 세대원(19세 이상)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이렇게 세 아이가 있는 홍이네 집에서는 카드를 다섯 장 받았단다.  


전화를 받은 센터 직원은 썩소를 지었을까, 미소를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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