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적 글쓰기의 맛보기
문학이 글을 매개로 하는 예술이라면 그 최고봉은 '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일종의 시가 아닐까, 그만큼 아름다운 표현들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뿐 아니라 허를 찌르는 사고의 전환을 보여주는 기발한 문장들이 즐비하다. 아마도 글을 예술로 쓰고 싶다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필수일 것이다.
세밀한 관찰력과 섬세한 표현력, 그리고 사물을 단숨에 다른 세계로 옮기는 은유적 발상의 소유자 프루스트를 읽어보자.
1
레오니 아주머니는 보리수차를 청했다. 그리고 마르셀은 약봉지에서 정량의 보리수를 꺼내 접시에 담고 끓는 물을 부어 넣었다. 그렇게 하면서 마르셀은 다음과 같이 마른 보리수를 묘사하는데,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표현과 발상이 모두 놀랍다.
"건조되는 동안 오그라든 꽃줄기는 고르지 못하게 뒤엉켜 있었지만, 마치 화가가 최대한 장식하듯 매만지고 배열해 놓은 것처럼 빛바랜 꽃들이 거기서 활짝 열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역 앞 큰길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진짜 보리수 꽃줄기이며, 모조품이 아닌 진짜지만 오래되어서 모양이 변했을 뿐이라는 걸 이해하는 기쁨을 줬다. 나는 이 회색 알맹이 속에 아직 영글지 않은 초록빛 싹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특히 작은 금빛 장미처럼 매달려 있는 가냘픈 줄기들의 숲 속에서 그 꽃들을 드러나게 하는 부드럽고도 창백한 분홍빛 광채는 내게 이 꽃잎들이 약봉지를 장식하기에 앞서 봄날 저녁을 향기롭게 해 주었음을 말해 줬다. 이 분홍빛 촛불, 그것은 여전히 보리수 색깔이긴 했지만, 이제 꽃들의 황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들의 줄어든 삶 속에서 반쯤 꺼진 채 졸고 있었다. 이윽고 아주머니는 죽은 잎과 시든 꽃잎을 맛볼 수 있는 끓는 차에 프티트 마들렌을 담그고 과자가 충분히 부드러워지자 한 조각 내게 내밀었다."
가냘픈 줄기들의 숲 속에서 그 꽃들을 드러나게 하는 부드럽고도 창백한 분홍빛 광채는 내게 이 꽃잎들이 약봉지를 장식하기에 앞서 봄날 저녁을 향기롭게 해 주었음을 말해 줬다.
마르셀은 어린 시절 이 차에 젖은 마들렌의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지성이 아니라 그의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깊은 곳에 잊혀진 상태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러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니가 준 '홍차에 담긴 마들렌'을 맛보고는, 기억되어 있었던 그 날의 마들렌과 아울러 어린 시절 콩브레의 모든 광경들과 기억들이 떠 올랐던 것이다.
2
"내 방은 거의 닫혀 있는 덧문 너머로 스며드는 오후 햇살에 맞서 투명하고도 부서지기 쉬운 서늘함을 파르르 떨며 지켜주고 있었다. 대낮의 반사광이 그 노란 날개를 스며들게 할 방법을 찾다가, 나비가 꽃 위에 앉듯 덧문 문살과 유리창 사이 구석진 곳에 꼼짝하지 않았다."
대낮의 반사광이 그 노란 날개를 스며들게 할 방법을 찾다가, 나비가 꽃 위에 앉듯 덧문 문살과 유리창 사이 구석진 곳에 꼼짝하지 않았다
덧문 너머로 스며드는 빛을 나비에 비하다니...
3
토요일 저녁 유달리 멀리 산책하러 나간 마르셀의 가족들.
"역 앞 큰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근교에... 달빛이, 부서진 하얀 대리석 계단과 분수, 열린 철책을 흩뿌리고 있었다.... 나는 무거워진 다리를 끌며 졸음으로 쓰러질 것 같았다. 내게는 향기로운 보리수 냄새가 마치 엄청난 피로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얻을 수 있는 보상처럼 느껴졌다.... 멀리 떨어진 철책들 너머로는 우리의 적막하 발자국 소리에 잠이 깬 개들이 번갈아 짖어 대었고, 지금도 저녁 무렵이면 그 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그리고 역 앞의 큰길은 개 짖는 사이로 몸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지금도 내가 어디에 있든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또 그 소리가 서로 응답이라도 하기만 하면, 보리수나무가 있고 달빛이 비치던 역 앞 큰길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역 앞의 큰길은 개 짖는 사이로 몸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런 참신한 표현을 어디서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