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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똑 같은 길을 걸었다

도서관 갔다 오는 길

by 아이언맨

또 수요일이다. 도서 반납을 재촉하는 문자를 받았다. 오늘 밤 도서관 갔다 올 것이다.


출근할 때 미리 예정했었다. 그래서 즐겨 메는 배낭에 반납할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가와시마 히데아키의 <로마 산책>을 넣어 두었었다.


<로마 산책>을 먼저 읽었었는데, 좀 두서없고 지루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안데르센의 <즉흥 시인>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장황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바람에 흥미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일본 작가와 번역가 등의 이야기가 전개될 때 정신이 산만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로마의 지리에 대한 이정표는 머릿속에 잘 담을 수 있었다.


로마를 보는 눈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가늠이 되었다는 말이다. 먼저 로마의 일곱 언덕과 여덟 번째 핀초 언덕 중심으로 전개되는 풍경을 따라갈 수 있겠다. 특히 캄피돌리오 언덕, 팔라티노 언덕, 그리고 핀초 언덕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로마 전경을 개관적으로 볼 수 있는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두 번째는 순례길을 따라가는 진행이다. 북쪽의 포폴로 문으로 들어와서 남쪽으로 테베레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로마 외곽으로 흩어져 있는 주요 성당을 방문하는 코스. 그리고 다시 아우렐리우스 성벽 안으로 들어와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몇 성당을 방문하고서는 산 마리아 마조레 대 성당에서 끝나는 순례길 코스, 아마 종교인들에게 관심이 있을 듯한 진행이다.


하지만 비신자에게도 흥미로운 것이 있다. 순례자들을 위한 장치가 두어 가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오벨리스크이다. 높이가 20미터에 달하는 오벨리스크는 멀리서도 보이는 이정표로 순례자들에게 확실한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목마른 순례자들의 목을 축여 갈 수 있는 분수들이다. 이 분수들은 주요 수로가 지나가는 곳에 있다. 하나는 고대 로마 시대 아그립바가 만든 비르고 수로로 북쪽에서 시작하여 남쪽 방향으로 이어져 트레비 분수에서 끝난다. 또 하나는 식스토 5세 교황에 의해 만들어진 펠리체 수로인데 남쪽에서 북쪽으로 물길이 나 있으며 스페인 계단 앞 바르카 분수로 이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인터넷을 검색도 해보고 챗GPT에 물어 보기도 하고 하면서 읽다 보니 지리나 지명등을 훨씬 쉽게 익힌 것 같다. 로마를 다녀온 친구들과 이야기하거나 언젠가 로마를 방문하여 도시 산책을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은 보행의 역사와 미래를 논한 책이다. 시골 산책, 도시 산책, 등산 등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은 충격, 아니 의아함이 있었다. 17세기 이전의 보행은 이동의 수단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 생각건대 즐거움 또는 문화 행위로써의 보행이,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근세 이전의 세계에서는 보편적이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은 어쩌면 놀라울 게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현재 중심적,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있었는지 보여 준다. 특히 여성들의 보행이 보장될 수 없었던 여러 요인들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자유로운 보행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 첫째 자유로운 시간, 둘째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는 공간, 셋째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는 신체. 이 모든 것이 완벽히 보장되는 경우란 드문 편이다.


영국에서는 보행 공간을 가로막는 사유지 소유자와의 보행권을 위한 법적 투쟁이 있었다. 결국 사유지에 난 길을 걸을 수 있는 권리가 확립되었다. 미국에서는 보행 공간을 확보하고 침해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결과 국립공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보행은 사색의 수단, 자연의 경관을 즐기는 수단, 종교적 순례의 수단, 도시 경관과 사람들을 마주치는 수단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수단으로도 그 역할을 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공공의 거리를 걸으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행진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오늘날, 그리고 미래의 보행에 대한 통찰 한 마디에 경각심을 가진다. "걷는 일이 지표종이라면, 헬스장은 몸을 쓰는 일의 멸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자연보호 구역이다. 자연보호 구역이 서식지를 잃은 종을 보호하는 곳이라면, 헬스장은 몸을 쓰는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들이 없어진 이후에 몸이 멸종하지 않게 도와주는 육체 보호 구역이다."


전통적인 보행 문화는 어떻게든 남아 있겠지만, 대중들 사이에서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있으며, 소수의 매니아들만 이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 문명과 길거리 범죄 등의 문제들이 보행 문화의 역사의 걸음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난 일을 마친 후 저녁에 도서 반납 가을 산책을 나갔다. 도서관에 두 권을 반납하고, 또다시 줌파 라히리의 <로마 이야기>를 빌려 배낭에 넣고 이 주일 전 걸었던 주택가 길을 걸어 집으로 귀환한다. 좀 더웠다. 도모헌의 높은 담장을 지날 때 진한 솔향이 느껴졌다. 집까지 평지 같은 아주 얕은 오르막을 세 번 만났다. 부엉이 소리는 없었지만 지난번 보다 많은, 그래 봤자 열 손가락으로 두 번 꼽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마주치거나 지나치거나 했다.


집에 들어와선 차가운 물로 이마에 송글 맺힌 땀을 씻어내어야 했다. 마치 거대한 장애물을 넘어 행진해 온 투사처럼, 아니 걷기를 좋아하고 길에서 마주한 사소한것들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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