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대 어울마당에서
이기대 어울마당이다. 널찍한 마당과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계단에 앉아 바닷바람을 한껏 안으며 달콤한 쉼을 만끽하고 있다. 저 멀리 해운대가 보인다. 광안대교와 그 뒤로 장산, 그 오른쪽에 마린시티의 거대한 고층 건물, 그리고 하늘로 쭉 뻗은 세 개의 LCT 건물. 오른쪽에 달맞이 고개와 그 아래로 블루레일웨이. 달맞이 고개 끝에는 청사의 꿈을 꾸는 스카이워크와 하얀 등대 그리고 빨간 등대. 그 옆으로는 파란 수평선. 수평선 위로는 파스텔톤 하늘과 구름.
바람 속엔 파란 바다의 숨결. 파도는 끊임없이 해변으로 밀려오고. 오륙도에서 걸어온 발걸음을 멈추고 앉은 이곳에서 땀이 천천히 식어간다.
이기대길에서 마주친 사람들. 지나치던 외국인 여자가 작은 소리로 뭔가 말을 건네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그 말을 알아차렸다. 그 뒤를 따라오던 외국인 남자가 똑같은 말을 건넨다. 작은 목소리로. 무거운 입으로 걷던 나도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어떤 분에겐 부끄러운 듯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또 다른 분에겐 'Hello'하고 인사를 건넸다.
이 넓은 세상에서 이 길에서 만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연일까. 모든 게 인과관계로 이어져 있다고 믿은 옛 현자들은 이를 '인연'이라고 했다. 비록 전생이 없다 하더라도 마주친 우리 모두의 몸은 언젠가 한 사람의 몸을 구성했던 원소나 원자들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적어도 그 누군가가 호흡했던 숨결, 이제는 흩어져버린 그 한 자락의 숨결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다면 세계는 하나인 것. 너와 나가 아닌 우리.
졸졸졸 물이 나오는 작은 약수터에 앉았을 때 뒤 따라오던 일행도 잠시 쉬어 가자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비타민을 하나 먹자고 서로 나누어 주다 나에게도 하나 준다. 이 부근에 산다고 하니 '좋은 곳에 사시네요.' 한다. '예, 참 좋은 곳입니다. 이사 오세요. 어디서 오셨나요?' 서울서 왔단다. 친구가 좋은 곳이라며 가자고 하여 왔단다.
미소를 건네고, 친절을 베풀고, 말을 건넬 때 미완의 인연은 완성된다. 잊혀질 수도 있겠지만 아마 어떤 이들에겐 문득 생각날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자연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하리라.
오늘은 걸으면서 생각을 버려야지, 길가 풀섶의 잊혀진 야생초의 이름도 그저 잊은 채로 관심만을 주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어울마당에 앉아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면서 길 위의 사유를 풀어내고야 말았다.
조금만 더 가면 동생말, 이 길의 끝이다. 그만 일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