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인연)-
오랜만에 피천득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미국에 오기전, 내 방에 있던 서재를 살펴보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4년. 단 5권의 책을 채 읽지 않았던 나.
헌데, 서재엔 언제 내가 책을 좋아했지? 물을만큼의 꽤 많은 책이 쌓여 있었다. 피천득의 인연은,
먼지가 쌓인 서재에서 내가 미국으로 가져온 3권의 책 중 한 권이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 산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피천득(수필)-
나는 보르헤스를 모르고 마르케스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등장인물을 찾아가며 앞 뒷장을 살펴보고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찾는 것이 싫어졌던 것일까? 나는 언젠가부터 쉽게 읽혀지는 어느 소녀의 짝사랑
사연 같은 글이 좋다. 그래서 나는 피천득의 글이 좋다.
간결한 문장 속에 읽는 대로 읽혀지는 그의 글. 그가 말했듯, 그의 글을 읽으며 무릎을 탁하고 친 적이 없지만, 모두가 잠든 어느 늦은 밤, 그의 삶을 나 혼자 듣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어제 ‘인연’ 속 세 편의 짧은 수필을 읽었다. 10년 전에 읽은 그의 ‘인연’. 시간과 함께 거짓말처럼 기억도 지워졌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의 몇몇 문장뿐이었다.
무엇인가를 잊어버리는 것은 그 시절에 나의 시간과 노력도 함께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어쩌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의 수필을 읽을 때,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좋았다.
생전 맛보지 않은 어느 남미의 음식을 먹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