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수민이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연결되는 산티아고 순례길.
한번 가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800km 의 길.
스물 다섯. 그때 내가 산티아고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사서고생.
젊은 날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한다.
근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충분히 고생했다고 믿었다.
이제 고생은 피할 수 있으면 할 수 있을 때까지 했으면 했다.
도서관으로 출퇴근하고, 군대에 갔다 왔으면 됐지.
무슨 유럽에 가서까지 사서 고생이야.
그렇게 나는 그곳에 가지 않을 넘치리만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한 살 어린 동생이자, 군대 선임이자. 친구인 승한이와.
우리는 그렇게, 빨간색 시트로엥 차를 타고 스페인 남부를 돌았고,
형형색색의 안달루시아의 건물과 유럽여자에 “죽인다” 면서 하하 웃었고.
포르투갈, 해변의 어느 텐트 안에서 “모이 또 봉”이라면서 포르투 와인을 마시고,
오후 2시까지 마음대로 잤다. 돈도 없고, 예민해져서 계집애마냥
그와 싸우기도 하고, 보험 없는 차의 백미러에 흠집이 나서 좌불안석이 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어쨌든 그 한 달간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그때, 20대가 지나가기 전에 꼭 다시 오자고 약속했는데.
같이 간 친구는 마이애미에서 비행교육을 받고 있고, 나는
이렇게 아직 글을 끄적대고 공상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한동안, 다시 유럽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그때 산티아고를 선택했다면 3년간, 난 좀 더 값지게
살았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게 됐을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근데,
사실, 그날 산티아고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가 않다.
바쁘고 지칠 때, 산티아고 길에서 본 노오란 해바라기가 생각나는 누가 있듯,
나는 바르셀로나의 어느 낡은 호스텔. 멀리서 들리던 한 여자의 신음에
입을 막으며 한없이 웃던, 그날의 나와 승한이를 생각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