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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body Nov 17. 2015

게임 창업 고군 분투기 #6

엄마와 7번째 괴짜

제 9 장 - 우리 엄마

그 형님은 결국 전화를 받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사람을 너무 믿은 내 우둔함에 화가 났고 그 순간 엄마를 떠올리는 나 자신에 또 한번 화가 났다.


중퇴를 결심하는 순간 버려진 2년간의 대학 학자금, 한국보다 2배가 비쌌던 4년 동안의 유학 비용, 그리고 결혼 비용까지... 엄마는 항상 한 가지만을 바라며 퍼주시기만 했다.


'우리 아들 잘돼라'


바보 같은 나는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했다. 학자금도, 유학 비용도 우리 집은 부자라서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대학 학자금은 은행 돈이었고 유학 비용도 아버지 퇴직금을 담보로 한 은행 돈이었다.


나 때문이었다. 퇴직하면 조용히 살고 싶다 하시던 아버지는 나 때문에 계속 일을 하셔야 했고 아픈 곳이  많아졌다는 엄마는 나 때문에  또다시 장사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난, 이 무능력한 아들은 마치 세 살짜리 아이처럼  또다시 엄마를 찾고 있었다. 한 달, 딱 한 달만 쓰고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약속 하나를 믿고 엄마는  언제나처럼 나의 영웅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주름 하나와 근심 걱정 하나를 얻어 가셨다.




제 10 장 - 7번째 괴짜를 찾아서


급한불은 일단 껐다. 하지만 게임의 완성이라는 더 큰 불이 남아 있었다. 게임을 본격적으로 만들기로 하면서 큰 변화 2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6명 모두가 회사를 나와 함께 하기로 했다는 것, 둘째는 게임의 장르를 RPG로 바꿨다는 것이다.


RPG로 하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모두 다 미쳤다고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 같다. 테리가 구석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던 것을 빼고는 어떻게 설득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가 RPG를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장르를 바꾸자마자 아주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원화가와 애니메이터 그리고 이펙터의 부재였다. 우리 중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애니메이션을 잘 하는 사람도 이펙트를 잘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자금적인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상황을 조금 다르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여전히 우리는 돈이 없었지만 혜리 씨는 그림을 그릴 수는 있었고. 범구는 이펙트를 만들 수는 있었다. (사실 둘 다 엄살이 심하긴 하지만 잘한다.)

하지만 여전히 애니메이션만은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애니메이터를 뽑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7번째 괴짜를 찾기 시작했다.

자타공인 실력자 '서태웅'은 아니지만 가능성과 센스를 타고난 '강백호'와 같은 인물들이 아직까지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리 주변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난 아직도 믿는다,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천재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그 천재들 중 하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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