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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ker May 26. 2016

내가 사랑한 MMO들 5.

MMORPG의 커뮤니티

지금까지 해 온 얘기들에서 잠시 벗어나, MMORPG의 커뮤니티 일반을 잠깐 살펴보죠. 들어가기에 앞서 이건 아주 많이 단순화한 얘기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믿기보다는 자기만의 해석을 조금씩 곁들이셔야 할 거라는 점에 유의해주세요. 


MMORPG에서 커뮤니티의 속성은 크게 ‘친목’과 ‘기능’으로 나뉩니다. 친목이란 우리가 흔히 아는, 모여서 즐겁게 노는걸 의미하죠. 게임에 접속해서 대도시 한 복판에 캐릭터를 세워놓고 길드 채팅창만 바라보며 몇 시간씩 채팅을 했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있나요? 길바닥에 동전(이나 그 외 다양한 게임 내의 오브젝트)를 늘어놓아 글씨를 만들며 히히덕거렸던 기억은? 그런게 친목이죠. 사람이 좋아서 사람들과 교류하게 하는 커뮤니티의 속성. 게임 내에서 어떤 이득이나 실용적인 유익함이 주어지지 않아도 그냥 같이 노는게 재밌어서 하게 만드는 힘.


반대로 ‘기능’은 실용적인 차원에서 게임이 요구하는 부분입니다. 예를들어 파티는 일종의 커뮤니티입니다. 파티를 해야하는 이유는, 게임이 그걸 요구하기 때문이죠. 탱커와 딜러와 힐러가 갖춰져야만 온전한 사냥이 가능하기에 파티라는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내게 해당하는 ‘기능적 역할’을 충족시키는 것. 그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사람보다는 그 캐릭터의 성능과 캐릭터를 조작하는 능력에 더 관심을 두는 관점. 


기능적 커뮤니티에서 플레이어는 특정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는 기능적인 요소로만 고려되곤 합니다. ‘어그로 잘 끄는 탱커,’ ‘위기시 긴급조치가 빠른 힐러,’ ‘혼자서도 잘 살아남으면서 딜도 잘하는 딜러’ 하는 식입니다. 그 탱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디사는지 직업이 뭔지 이런건 고려되지 않아요. 반대로 친목적 측면으로 커뮤니티를 볼 때는 기능적인 부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직 저렙인 아는 누님이 있어요. 우린 그 누님이 인던돌 때 만렙 캐릭터로 가서 도와주죠. 만렙으로 저렙 던전에 갈 이유는 없지만, 그냥 그 누님을 돕고 싶으니까요. 딜러인데 딜량은 썩 신통찮은 아는 형이 있어요. 대단한 딜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레이드에 함께 갑니다. 레이드를 클리어하는 시간은 좀 늦어질 수 있지만, 이 형은 대단한 입담을 가지고 있어서 레이드가 즐거워지거든요.


물론 대다수 MMORPG의 커뮤니티는 이 두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고, 대체로 적절히 섞여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설명의 편의를 위해 극단적인 경우들을 가정해보죠. 먼저 ‘극단적인 친목적 커뮤니티’입니다. 이런 커뮤니티에서 게임은 사실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이 오프라인 친구들과 어떤 게임을 같이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은 게임 이전에 ‘먼저’ 친구가 되었고, 친구들끼리 함께 할만한게 없을까를 찾다가 같은 게임을 하게 된거죠. 그 반대도 성립합니다. 게임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까지 가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두 케이스 모두, 게임은 ‘부차적인것’이 됩니다. 어떤 게임을 같이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울려서 노는게 재미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니까요. 반대로 ‘극단적으로 기능적인 커뮤니티’를 보면, 여기엔 개인이 없습니다. 포지션과 역할이 있을 뿐이죠. 자기 포지션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이 발로 마우스를 클릭하며 혀로 키보드를 누르고 있는지 여부는 아주 부차적이 됩니다. ‘게임이 요구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가’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MMORPG는 커뮤니티의 기능적 필요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왔습니다. 처음 리니지에서 커뮤니티라는게 중요하다고 소개드린 이래의 모든 내용이 그러했죠. 에버퀘스트의 파티플레이를 거쳐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의 진영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MMORPG들이 발전해 온 방향 자체가 그러합니다. MMORPG에서 커뮤니티는 중요하고, 그 커뮤니티의 필요를 강조하기 위한 조치들이 이어져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강조는 주로 ‘기능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져왔구요. 그렇다면 친목은 어디간걸까요? 친목은 적절한 선에서는 무척 좋은 요소이지만, 너무 강조하기엔 위험하기도 합니다. 게임에서 만나 돈독한 친구가 된 이들은, 친해진 계기가 게임이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게임은 필요 없어집니다. 단톡방을 파고 거기서 대화하며 페친을 맺고 게임 외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기 시작하니까요.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을 하면서 만나 결혼한 부부는 결혼한 이후에는 계속해서 다옥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결혼을 했는데요 뭐. 커뮤니티의 ‘친목적 측면’은, 지나치게 강화되면 오히려 게임에서 이탈해버리죠. 그래서 이걸 강조하는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로 ‘기능적 측면’에 집중해서 강화가 이루어져 온 것이죠.


이렇게 수년간에 걸쳐 이루어져 온 커뮤니티의 기능적 측면에 대한 강화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기보다는 기능으로 대하기 시작하는게 그것이죠. 여러 장르의 게임들에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MMORPG에는 소위 ‘면접’이라는 관행이 존재합니다. 고난이도 컨텐츠에 도전하기 전에 함께 할 사람이 그에 걸맞는 ‘기능적인 자격’을 충족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에요. 아이템의 레벨을 체크하거나, 어떤 레이드를 어디까지 해봤는지 확인합니다. 그 사람이 이 게임을 하고자하는 뭔가 절박한 심정이라도 있는지, 게임에서 관심사는 무엇인지, 어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지 등은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오로지 그 캐릭터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정도인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유사한 사례는 리그 오브 레전드 등의 다른 장르 게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위 ‘내분’이 잦은게임이죠. 게임에 들어가기 전 캐릭터를 고르는 밴앤픽에서부터 마찰이 시작되곤 합니다. 누가 미드를 가야하는지 누가 서폿을 할건지를 두고 다툽니다. 각자 즐겨하는 포지션이나 챔피언이 뭔지, 왜 그 포지션 또는 챔피언을 선호하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그 사람이 잘하는 포지션과 챔피언이 궁금하죠. 오로지 눈앞의 과업을 이루는데 상대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할 뿐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기보다, 사람을 일종의 기능으로 간주하는거죠. 친해질 겨를 같은건 별로 없습니다.


이전의 커뮤니티, 즉 아직 친목과 기능적 목적이 혼재된 상태였던 커뮤니티에는약간의 유연성이 존재했습니다. 저렙 던전에 갈 이유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친목적인 이유에서 아는 누나의 저렙 던전 도는걸 도와줍니다. 그렇게 레벨업한 누나가 나중에 공대의 당당한 메인 힐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친목적 관점에서의 행동이 기능적 유익함으로 이어지는 경우입니다. 반대로 빠른 상황판단과 적절한 대처를 보여주었던, 즉 기능적으로 훌륭한 탱커를 그 유익함이 필요했기에 오랫동안알고 지내다가 서로 개인적으로 친해지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기능적 측면이 친목적으로 이어지는거죠. 위에서 잠깐 설명드렸었지만, 모든 커뮤니티들이 칼같이 친목 또는 기능으로 나뉘지는 않습니다. 친목적 속성과 기능적 속성은 서로 균형을 이루며 상호작용하거든요. 일종의 중간지대가 존재하는거죠. 이 중간지대는 기능과 친목 한 쪽으로 쏠려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완화시켜주는 일종의 버퍼 역할을 하는 거고요.


그러나 우리는 커뮤니티의 기능적 측면을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강화해왔습니다. 이제 그런 버퍼는 존재하지 않죠. 위에서 설명드린, ‘면접’ 관행이나 밴앤픽에서의 마찰과 같은 일들이 아주 빈번하게 벌어지게 되었지만 이를 조정해 줄 중간지대가 없기에 조정도 없습니다. 마찰은 조정되지 못한 채 격한 트롤질, 점잖게 말해 플레이어들간의 분쟁으로 남게 됩니다. 


다음화에서는 커뮤니티의 ‘친목’과‘기능’의 관점을 가지고 이전화에서 얘기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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