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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Feb 04. 2021

방금 떨어트리셨어요, 역에서.

당신의 조각을 채워주고 싶어지는 장소.

알랭드보통은 그의 책 <공항에서 일주일을>에서 말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무엇이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향하게 된다고.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누구와 무엇을 하고싶은지 떠올리며 용기를 갖는다고. 그래서일까, 역에서는 털어놓고 싶어진다. 아직 그리워하고 끝내 잊지 못하는, 고백처럼.      


 @Artur Tumasjan


어떤 이는 여행을 하기 위해 역으로 간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을 하기 위해서. 번쩍거리는 전광판,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혼잡한 소음, 바쁘게 달려가는 모습과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가락, 열차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와 커다란 시계 바늘이 교차하는 순간, 손을 흔들고 와락 껴안고 저 멀리 뒷모습을 바라보는, 재회, 만남, 약속, 안부가 공존하는 장소.     



역처럼 들키기 쉬운 곳이 있을까. 조금만 방심하면 상기된 말투, 조급한 표정, 새어나오는 초조함, 밀려오는 피곤함, 그리고 결국 남겨두는 미련같이. 표를 챙기고 짐을 부치고 자리를 찾고서 뒤돌아 손을 흔들던 순간까지도 잘 감춰둔 표정들이 결국 드러나고야 마는 순간. 언젠가 당신은 역에서 무엇을 떨어트렸을까. 지금까지 남몰래, 얼마나 많은 것들을 떨구어 왔을까. 아무도 볼 수 없도록, 떠나기 직전에야. 떨어진 조각들이 반짝이는 역에서 한 조각을 주워든다. 기차가 떠나기 전에, 이곳을 영영 떠나버리기 전에.     



리스본으로 떠나던 날, 출국 대기실에서 창 밖을 보는 내 옆으로 그녀가 다가온 것은 아마도 들켰기 때문이다. 혼자라는 것을. 혼자인 사람은 대개 혼자인 사람을 알아채고 곁에 앉으니까. 꼭 대화를 나누길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Dennis Gecaj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는 그녀는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벨기에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녀의 이름 중간엔 Pearl이 들어가는데 그래서 한국에서는 진주라고 불렸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내게 촌스럽지 않냐고 묻더니 꼭 할머니 이름 같다고는 투덜거린다. '할머니 이름' 이라니, 그 어감이 귀여워 웃음을 터트리자, 벨기에에서도 한국에서도 할머니 이름이라고 놀림을 받았다며 뾰루퉁하다. 하얗다기 보다 흰, 피부에 물결치는 곱슬머리의 낮고 가녀린 목소리. 꼭 명화와 닮았다. 여러모로.      



와플은 꼭 먹어봐야 하는데 어딜가도 맛있으니 벨기에의 어디서든 먹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던 그녀는, 또 몇 군데의 '어디서든' 먹어도 되는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말해줬다. 조언이랄 것 없는 말을 새겨들으며 또 먹어야 하는 -거의 전부인- 것들에 대해 잔뜩 수다를 떨고 헤어질 쯤이었을까.    


 @Katlyn Giberson


공항에 누가 마중을 나와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바로 기차역으로 가야한단다. 두시간쯤 가면, 할머니 집에 온 가족이 모여있다고.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잇는다. 한국에서부터 내내 할머니가 가장 보고 싶었다고, 그리고 실은 이 이름은 할머니의 이름이 맞다고. 자신이 태어났을 때 아빠가 할머니와 똑같은 이름을 중간에 넣어주었다고. 그걸 알 리없는 사람들은 놀리지만, 사실은 비밀같은 거라고. 할머니와 연결되어 있다는, 꼭 같이 있다는 느낌. 그래서, 사실은 마음에 든다고. 퍽 좋다고.      


@Katlyn Giberson

상대방이 촌스럽다고 말할까봐 "아휴, 내 이름 촌스럽지." 선수치며 종알댔던 이유가 '할머니' 이름이라서 였구나. 그녀의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아끼고 있어서.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가 이내 사랑스러워졌다. "촌스럽지 않아, 음 말이지, 꼭 고전같아."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거야. 중간의 다른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서 더욱 그렇게 되어버린, Pearl Willams – 진주 윌리엄, 잘가! 오흐브와.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뉴욕으로 가는 하늘 위. 옆 자리에 앉은 그녀는 도착과 동시에 갈 장소에 대해 나열에 가까운 설명을 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자연사 박물관, 몇 곳의 캠퍼스 투어와 워싱턴으로 이동하는 일정까지. 괜히 말을 꺼냈다 싶어지는 어린이 전문 서점(Books of wondor)을 지도에서 찾아보더니 '아이가 좋아하겠어요. 아, 이곳은 언제가지. 그럼 앞의 일정을 조금 당기고...' 하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다가 마침내 틈새를 만들어냈는지 표정을 풀며 웃어보인다. 그런 자신이 유난스러워 보이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아이를 위해 가는 여행이라고 코를 찡긋거리며.     




뉴욕은 이번이 두번째인데, 갓 직장인이 되었을 때 엄마와 가본적이 있다며 기억을 더듬는다. 하나 둘... 손가락을 꼽더니 벌써 십육년이나 지났다며 파뜩 놀라다가 허탈하게 웃어 보인다. 엄마가 된 이후로 시간이 참 빠르게 간다고, 그런데 아이의 시간으로만 쌓이는 것 같다고, 어떤 느낌일까. 잔잔히 담담한 표정. 아마 이따금 생각나도, 그때가 그립지는 않을 거라고.     



"이번 여행을 잊지 못 할 거에요." 당신처럼, 오랫동안. 그녀의 시간에 쌓이는 작은 꿈이 깨지 않도록 속삭였다.     


한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네가 그것들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너에게 돌아온다.

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앨런 긴즈버그 「어떤 것들」     



출국장의 작은 바(Bar)에 나란히 앉은 그녀는 와인을 주문했다. 두번째 잔을 주문하며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먼저 자신을 소개한다. 뉴욕과 시카고를 오가는 변호사인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살게 된지도 꽤 되었음에도 비행기를 타는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자세히는 모르겠어. 그저, 섞인것 같아. 모든 종류의 공포증말이야." 고개를 내젓고는 와인이 유일한 약이 될 뿐이라는 그녀에게, 좋은 비행이 되라는 말 대신 정 반대의 인사를 했다. 그러니까 하나도 재미없는 지루한 여행이 되라고. 푹.    


 @john Applese


역에서 만났던 그들은 무엇을 털어놓았을까. 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사실은 두려워하고 있는, 그리고 멀리 떠나온 기억에 대해. 일상에서였다면 말했을 리 없다. 처음 본 그러니까 이름 마저도 가물한- 통성명을 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부분을 드러낼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다. 역에서 사람은 타인에 관대해진다고. 기꺼이 들을 준비와 흔쾌히 도울 준비도 되어 있다고.     


@CHUTTERSNAP


언젠가 사람의 몸에서 에너지의 파장이 나온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에너지가 다른 사람의 기억이나 심상(心想)을 흔들어 놓는다는 것이었다.

-무라카미 류 <공항에서>          


떠나는 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기에. 그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중요하지 않다. 설령 거기가 얼마나 좋은 곳이라고 해도, 여기선 그저 짐을 들고 서성이며 약간은 불안한채로 조금씩 지쳐가는, 허울좋은 이름의 여행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Serhat Beyazkaya


그리하여 넌지시, 이해하고 있는게 아닐까. 어딘가로 떠날 때는, 그러니까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것은 무언가를 감수하고 있는 것이고 때로는 포기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괜찮아 보이거나 심지어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미처 드러내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가만히, 지켜봐 주는 것이 아닐까.     


어디든 갈 곳이 없다면

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가 보라.

<잘랄루딘 루미>     


@Flemming Fuchs


들키고 싶지 않은 것, 내심 들키고 싶은 것. 우리가 역에서 서로를 알아봐 준다면. 버리고 싶지만 차마 버릴 수 없기에 갖고 있는 것과 버리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버려야 할 때라는 걸 알아서 버리는, 그 것들을 알아채고 바라보며 공감해준다면.     


@Flemming Fuchs


우리의 일상에도 역이 있다. 일을 하러 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아주 평범하게 반복되는 오늘에도 역은 있다. 오늘 따라 밖을 나설 때 용기가 필요한 날도 있고 실은 주저앉고 싶은 날도 있다.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고 말을 하려고 하면 어쩐지 더 초라해질 것만 같아서 담담한 척 하지만, 정말로 꽤 고되었던 날도 있다. 집으로 오는 그 어느 중간 지하철 플랫폼에서 고개를 숙이고 버스 창가에 기대며 여기선 아무런 표정을 지어도 되는 그 골목에서, 그제야 서러움을 뚝뚝 떨어트리는 날도 있다.     


@Flemming Fuchs


그곳은 우리만 알고 있는 역이다. 여기까지는 집 근처라서 안심이 된다거나 이제는 제법 멀리 떠나왔다고 여겨지는, 그런 지점. 일정한 시간이나 특정한 장소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여기쯤 일상과 바깥이 교차하는, 그런 곳. 나만 알고 있는 나의 역.     


공항, 기차역, 버스정류장. 크고 작은 역에서

매일 무엇을 털어놓고 드러내는,

그 모든 매일의 역에서 우리가 알아볼 수 있다면.

당신이 떨어트린, 그 조각을 주워줄 수 있다면.      


장소와 장소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

어떤 장소도 시간도 아닌 ‘역’에서

비로소 연약하고 순수한 상태가 다.

그래털어놓고 싶어질 때.

무엇이든.

그, 무엇이든.


오늘, 당신의 역에서 반짝이는 것을 건네줄 수 있기를 바라며.


리스본에 도착한 후 펄에게는 인스타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냈고, 한국에 돌아온 후 어린이 서점에서 책을 읽고있는 한 장의 사진이 메신저로 도착했다. 역에서, 서로에게 털어놓고 서로에게 건네줬던 조각은 일상의 플랫폼을 희미하게 밝혔을까.


포르투를 떠나는 비행기에서 나란히 앉아서 일상에서 해야만하는 것들을 털어놓다가 가까워졌다. 둘 다 몹시 초췌했기에 대신 손가락을 찍었다.




매일 떠나보내고 기다리는 것이 있다.

그 역에서 마주친 당신에게 건네주고 싶다.

놓쳐 버린 것과 찾고 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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