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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Mar 21. 2021

마을이 온통 줄무늬로 채워지면,코스타노바

난 무엇을 적게 될까


오래 전, 바닷바람에 밀려오던 모래가 쌓이며 석호가 만들어졌다. 바다와 맞닿은 지점에서 수초와 소금을 싣어나르던 작은 배는 이제 여행객을 태우고 운하를 떠다닌다. 잔잔히 흐르는 강을 따라 걸으면 저 멀리 마을이 보인다. 코스타노바, Costa Nova. 새로운 해안이라는 의미를 가진 마을이다. 세월에 쌓여온 이야기가 결정처럼 빛나고, 오래도록 머금어온 그리움을 뱉어낸다.     


운하의 마을 아베이루 Aveiro.


코스타노바는 어부들이 발견한 마을이다. 먼 바다인 대서양으로 떠나고 돌아오며 '새로운 해안'을 발견했고, 그 뜻을 담아 '코스타노바'라고 불렀다. 바다와 마을 사이, 작은 해안은 어자재를 보관하기 위한 목재창고를 짓기 제 격이었다. 주로 창고로 사용하기 위해 드나들던 집에 머무르기 시작하며,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었다. 애초에 창고를 위해 지은 집은 그 모양이 단조롭지만, 조금씩 창문과 계단과 다락이 생겨나면서 마을 안팎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르내렸다.     

    

코스타노바 역에서 내리면 보이는 풍경


안개가 짙었다. 앞으로는 바다와 뒤로는 호수의 축축한 공기가 스며들어 일년의 절반은 마을의 모습이 가려졌다. 그래서 집을 찾기 위해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멀리 떠났던 배가 돌아오며 집을 무사히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부들이 직접 칠하기도 했고 때로는 가족이 칠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줄, 두 줄이 이어지며 마을 전체가 줄무늬로 칠해졌다. 



이후 코스타노바의 줄무늬 집은 '팔헤이로스, Palheiros'로 불리며 포르투갈의 전통 가옥이 되었고, 이 독특한 풍경에 반한 이들이 찾아오며 유명한 해안 마을이 되었다. 이제는 여행객을 위해 집을 내어주는 동네는, 아이러니하게도 집밖에 없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여행지가 되었다.     


   

마을은 조용하다. 이렇게나 유명해진 마을은 거리에 카페가 늘어났다거나, 어느덧 줄무늬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생겨났다거나, 혹은 여행객의 떠들썩한 모습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고요하다. 잔잔한 운하 마을에서 탄 버스의 종점역답게, 해안의 끄트머리 마을답게, 그래서 몇 걸음마다 멈춰서 뒤를 돌아보게 될 정도로, 그래서 아련해진다.     



여전히 이 집을 찾아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어느 밤 몇 척의 배가 마을에 가만히 닿으면, 조용하던 거리가 떠들썩한 생기로 채워질 것 같아서, 그 모습을 기대하며 나 또한 그리워졌다. 아주 보통의 일상이.     

  


이들은 먼 바다에서 일상을 그리워했다. 매일 보던 풍경을 그리워했다. 특별한 순간이 아니었지만, 소중한 순간이었다. 어느날 문득 멈춰서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그렇듯. 내가 가장 그리워 하는 것은 당연하게 곁에 있던 것들이다. 아무렇지 않게 불렀던 이름들,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 반겨주던 익숙한 냄새와 목소리, 동네의 낯익은 풍경, 문득 마주치던 반가움, 손을 잡고 걸었던 골목, 자연스레 헤어지던 순간. 내일도 이럴것 같았기에 아쉽지 않았고, 그래서 아득해진.      



줄무늬는 계절마다 덧칠을 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렇게나 선명한 까닭이다. 줄무늬를 칠하는 손길을 상상해본다. 평범한 오늘을 만들기 위한 매일의 노력 또한. 사실 어느날도 같지 않다.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고 내일은 더 달라질 것이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무언가 떠나고 무엇은 잊혀진다. 만약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오늘 멈춰서 기억을 채워가야 한다. 바래고 벗겨지는 날들을 지켜가야 한다.     



호수와 바다사이, 작은 마을에서 

일상은 신기루가 아닐까.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 있고

이렇게 있지만 사라져 버리는.     

 


코스타노바에서는 오래도록 걸었다. 음식점이라거나 카페가 눈에 띄지 않았던 동네는 오직 집 뿐이었고, 그래서 집으로 기억이 되었다. 열어둔 문으로 강아지가 쪼르르 달려나오고, 현관의 커튼 프릴이 귀여운, 빵 굽는 냄새가 풍겨나오는, 2층 창가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마을이라고.      



사람들은 진리가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태양계의 변두리에, 가장 먼 별 뒤쪽에, 아담 이전에, 최후의 인간 다음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영원 속에는 진실하고 숭고한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계기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코스타노바에 갈 때는 꼭 맑은 날 방문하라는 당부가 있다. 흐린 날이면 -아무리 그래도- 집을 찾기 위해 페인트 칠을 했을까, 싶은 일말의 의구심이 단번에 사라지게 될 거라고. 그렇지만 다음에 이 마을에 오게 된다면 안개가 자욱한 날이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꼭 그 마음이 되어 그리웠다가 간절했다가, 다행이었다가 아무렇지 않아지고 이내 당연해지는 일상의 기쁨을 느끼게 될 테니까.     


버스를 기다리며 발견한 가게


아베이루에서 10km 떨어진 작은 어촌 마을. 대서양과 Ria de Aveiro 석호 사이의 좁은 반도에 위치한 동네. 바다에서 쓸려온 모래에 가려졌고, 호숫가의 짙은 안개에 드러나지 않았던  마을은 줄무늬로 채워졌다. 일기장과 닮았고 편지지는 더 닮은 모습으로, 이렇게 무엇이든 적게끔 해버리는 마을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새삼 놓쳐버릴 것 같은 오늘과 당신을 떠올리게 하는, 이곳은 줄무늬마을 코스타노바다.     

버스가 오는 시간이 긴 마을
오래 바라보았던 오늘의 풍경
코스타노바, Costa Nova.


늦은 밤, 리스본에 도착해서 초록색 줄무늬 집의 색을 닮은 끈을 샀고 운동화에 묶었다.    

    

어쩐지 코스타노바가 아닌 다른 것들을 더 떠올리게 될 것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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