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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 Knowledge Aug 28. 2022

회피를 회피하기로 하면서

말과 글을 멀리 했다. 거기에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았지만 쌓인 거라곤 회의감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겐 간혹 공감을 받기도 했지만, 원래 내가 말과 글에 시간을 쏟은 목적이었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나처럼 생각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한 적은 없었다.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논리를 쌓아서 결론에 도달하지 않고, 결론을 내려놓고 그걸 그럴싸하게 포장할 논리만 가져다 붙인다고. 물론 그런 경향이 없는 시대는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교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타인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걸 보면서 답답해 했지만 사실 나 역시 누군가의 설득에 내 생각을 바꾸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으며, 내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쌓아올린 것들에 논리만 있지도 않았다. 그 논리란 것도 대체로 내 경험과 직관만이 뿌리였던 것들이라 누구에게 권할만큼 탄탄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냥 입을 닫고, 글을 멀리하고 살았다. 분명 예전 같으면 니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 밤새서라도 한번 따져보자고 덤벼들었을만큼의 헛소리를 들어도 그냥 쟤는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말았고 그거 따지고 싸울 시간에 그냥 코딩을 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드란 게 논리적으로 합당하게 짜기만 하면 프로그램이 의도한대로 돌아가는게 눈에 보이니, 말과 글을 가까이 할 때 갖지 못해 갈망했던 효능감을 수시로 맛볼 수 있어 좋았고, 개발자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면서 작년엔 연봉 앞자리가 바뀌었고, 프리랜서로 전환한 올해는 실수령액이 작년의 2배가 되었기 때문에 그냥 코딩 공부나 열심히 하고, 끝이 없는 공부 스트레스는 음주나 축구 관람이나 낚시 정도로 풀면서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다른 생각을 마주 했을 때 지나치게 짜증이 나는 걸 느끼면서 이게 진짜 맞는건가 싶어지기 시작했다. 


머리 속에 생각이 떠오를 때부터 그 생각의 형태가 명확한 일은 드문데, 예전엔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의 형태를 명확히 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마주 했을 때 이 사람과 내가 어느 지점에서 생각이 갈리는건지를 대략적으로 짚어낼 수 있어 쟤가 어떤 이유로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요즘은 내 생각이 정확히 뭔지가 글을 쓸 때만큼 스스로도 정리가 안된 상태로 다른 생각을 마주하다보니 쟤가 왜 저딴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짜증만 난다.


살면서 생각이 비슷하게 작동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면 감사해해야 할만큼 그런 일은 드물고, 대체로 다른 생각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할텐데 밀려오는 짜증의 크기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다시금 글을 좀 써볼까 싶어졌다. 어릴 때처럼 건방지게 누군가를 나처럼 생각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으로가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이 정확히 어떤건지 글쓰는 과정을 거치며 정리하기 위해서.


물론 위와 같은 목적의 글쓰기라면 굳이 어디에 게시할 필요는 없는거지만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나면 밀려오는 '어딘가에 올리고 싶다'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 올릴 것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SNS에 몰입하지 않도록 늘 경계할 것이다.


개발자는 생산자다. 코딩을 시작했을 때부터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별 거 아닌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생산자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해아하는지 깨달았다. 또한 그런 과정을 오랜 시간 거쳐야만 비로소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법인데 SNS에선 도는 '메타'에 따라 사람들이 정치 전문가도 됐다가, 기후 전문가도 됐다가, 원전 전문가도 됐다가 한다. 나도 그러고 놀 때는 몰랐는데 한동안 거리를 두고 보니 그 풍경이 참 우스웠다. 헛똑똑이가 되는 지름길인 것 같아서 거기에 휘둘리는 건 최대한 지양하려고 한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무슨 절필한 대문호가 다시 펜을 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쓰면 되지 뭐 이딴 걸 구구절절 적었나 싶긴한데, 이 역시 내 생각을 명확히 한 과정인 것 같아 그냥 게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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