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주신 십계명 중 여섯 번째 계명이다.
일곱 번째 계명은 바로 '간음하지 말라'이다.
오늘 예수님은 이 일곱 번째 계명의 의미를 재정의 해 주시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5:28)
But I say, anyone who even looks at a woman with lust has already committed adultery with her in his heart. (Matthew 5:28, NLT)
타인의 육체의 숨통을 끊는 것이 살인이 아니라 타인에게 분을 품는 것이 이미 살인이라면,
다른 이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이 간음이 아니라 '음욕을 마음에 품고' 이성을 바라보는 것이 이미 간음임을 예수님은 명확히 정의해 주시고 있다.
그런데 "마음에(in his heart)"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예수님은 천국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지옥불 또한 우리 안에 있는 것일 것이다. 천국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라면 마음에 분노를 품고,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들에게 천국이 그 안에 공존할 수 없을 것임은 쉽게 이해가 된다.
살인과 간음.
우리는 이 행위에만 집중을 해서는 이것들로부터 자유할 수 없다. 어떻게 불의한 이 세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타인에게 분을 품지 않을 수 있고, 언제나 현란한 노출로 우리의 시선을 유혹하는 티브이, 유튜브, 영화, SNS, 광고의 영상 홍수의 시대 속에서 나는 언제나 청결한 눈빛으로만 살고 있다고 거짓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 싶은데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서는 백전백패이다. 그것보다는 아예 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를 소멸해야 한다. 그것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되는 일이다.
즉, 오히려 행위 자체보다도 그 행위의 원천이 되는 마음을 하나님 나라로 잘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본 뜻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의 욕심과 자아를 이미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
그 마음에 성령님이 살아계시고 그분께 삶의 모든 주권을 드린 사람.
성령님이 살아계시기에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 임한 사람은 분노와 음욕으로부터 자유함을 경험하게 된다.
행위가 정결해서 대가로 그 안에 천국이 임한 것이 아니라, 천국이 임했기에 행위가 정결해지는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4:23)
Guard your heart above all else, for it determines the course of your life. (Proverbs 4:23, NLT)
오늘 하루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품고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살면서 도저히 나의 능력으로 넘어갈 수 없는 장벽들을 만날 때 그 장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섬기고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