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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나 May 26. 2019

끝의 시작

무채색의 위로 14

예전에 내가 다녔던 학원에는 정말 독특한 선생님이 계셨다. 사회탐구 영역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원래 온라인 강의를 하는 일타 강사가 되려는 원대한 꿈이 있었지만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서 학원에서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혼자 살던 선생님이 자기가 밥을 해 놓은 걸 몇 주 동안 까먹고 그대로 뒀다가 나중에 밥솥 안을 보고 기겁을 하여 밥솥을 통째로 버렸다는 말을 수업시간에 해줬던 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수업 시간에 웃으라는 건지 웃지 말라는 건지 헷갈리는 이야기들을 자주 했던 분인데, 사회탐구 개념을 설명해 줄 때 그런 식으로 독특한 경험담을 풀어놓으며 오버하는 게 이유 없이 재밌었다. 그리고 그런 시답잖은 웃음거리는 무료한 학창시절의 좋은 피난처라 나름 그 선생님의 수업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학원 근처를 지나갈 때면 종종 그 선생님 생각이 난다. 추억이나 그리움이나 내 이름도 모를 그 선생님에 대한 좋았던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영화에 대해서 했던 말 때문이다.

 

 선생님은 수업을 하다가 자기는 영화를 못 본다는 말을 했다. 이유인즉슨 그 영화가 끝나는 게 두려워서. 영화가 끝날까봐 영화를 못 본다는 거였다. 영화는 끝날 게 분명한데 말이다. 나는 솔직히 그 엉뚱한 말이 이해된 적이 없었다. 이렇게 두서없이 그 선생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건 시간이 지나며 그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가 끝나는 게 두렵다는 감정을 잘 느껴보지 못했다. 창창한 어린 날에는 완전히 끝나버릴 만한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런데 몇 번의 시험과 졸업, 이런저런 사람들 사이 관계의 끝을 경험하고 나니 끝이라는 것이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영화가 상정한 세계관과 환상은 연기처럼 사라지듯이, 무언가를 끝낸다는 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무작정 내동댕이쳐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절대 보지 않는 그 선생님처럼 나 역시 자꾸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하지만 그간 나는 어떻게 선생님과는 달리 새로운 영화들을 보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오히려 영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어떤 날들이 있었다. 얼른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면, 성인이 되었으면, 시험이 끝났으면 하고. 그 때 나는 지금 잠시 머무르는 이 영화관을 나서기 위하여 영화가 끝나기만을 준비하고 기다렸었다. 그러니 내가 봤던 모든 영화가 끝나버릴까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 끝나는 것이 아쉬운 영화가 있었던 반면 얼른 끝나버렸으면 하는 영화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이 기다려졌던 이유는 그 후에 상영될 새로운 영화 때문이었다.

 

 여전히 나는 나를 감싸주고 둘러싸주었던 이 세계와 가치관,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게 무섭다. 영화관에서 나와서 영화와는 영 딴판인 나의 세계를 현실로 맞이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선생님처럼 아예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오히려 좋았을 것 같다. 영원히 영화를 보지 않기만 한다면 영화가 끝날 일은 없으니까, 선생님은 아주 합리적인 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처럼 영화가 끝날 것을 안다는 이유로 평생 영화관을 멀리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가 끝난 후 그 영화관에서 나와야만 비로소 또 다른 새로운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끝이 나야만 시작할 수 있다.

 

 2019년이 어느덧 반이나 달려왔다. 아예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한 올해의 영화들이 있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었고 나의 영화들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영화관에서 나설 준비를 해 본다. 새 영화들의 관람을 시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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