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얀나 Dec 17. 2018

황학을 떠나보내며

무채색의 위로 4

 내가 대학교를 다니면서 했던 가장 무모한 일은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과에 복수전공을 신청했던 것도, 수강생들 사이 각양각색의 스타일이 공존하던 미대 수업을 신청하거나 학점을 잘 받기 어렵다는 낯선 고대어 수업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힘들다는 이유로 우리 과 수업을 더 듣겠다며 무작정 몇십 학점이나 수강해 놓았던 복수전공을 포기했고, 미대 수업에서는 유일한 타과 학생이라는 신분과 나를 평범에도 못 미치게 만드는 멋진 공작새같은 수강생들의 눈초리가 버거워 수강한지 한 주 만에 철회 버튼을 클릭했으며, 고대어 수업도 자포자기하고 C+를 받은 후 재수강을 거쳐야 했다. 나는 꽤 높은 학점으로 학부를 졸업했는데, 아마 이렇게 큰 도전을 두려워하며 야금야금 할 수 있는 것만 정복하고 있었던 내 성향 덕에 학점이 높게 유지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 소심하고 비겁(?)하다. 학점은 성실성의 지표이기도 하지만 무엇이 얼마나 내 성향과 취향에 맞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내가 저질렀던 가장 무모한 일은 바로 80명이나 몰려든 국문과의 소설 창작 수업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국문과 수업은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던 내가 국문과 수업, 그것도 실기 수업에 지원하다니. 무슨 생각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내 성격에 그 수업을 철회하지 않고 무작정 끝까지 들었다는 것이 놀랍고 기특하기까지 하다. 수업에는 아는 사람 한 명 없었고 나는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수강생들은 중간고사 전까지 이론 강의를 듣고 기말고사에서 자신의 단편소설 하나를 완성해 제출해야 했다. 중간고사 이후부터 기말고사까지는 학생들의 미완성작을 함께 읽고 비평했다. 비평 전까지 진행된 이론 강의는 솔직히 다 이해하진 못했다. 그래도 나는 소설을 좋아했고, 늘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서 소설을 배우고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강의실의 이방인처럼 늘 창가 구석자리에 혼자 끼이듯 앉아서 다른 친구들의 소설을 관조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교수님이 땀자국이 다 보일 정도로 팔을 올려 가며 사투리를 섞어 열심히 강의하는 것도 하나의 묘미였다. 그래서 그 학기에는 그 수업을 꽤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학기말 즈음 비평이 시작되자 수업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빠르게 읽었다. 누군가의 한 문장을 읽고 그 수강생의 능력을 흠모하고 또 질투했던 기억도 난다. 소설 자체도 재밌었지만 거기에 더해지는 학생들과 교수님의 비평이 소설을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하도 많은 소설을 읽어서 전부 기억을 할 수는 없지만 황학에 대해서 썼던 한 소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내용을 간추리자면 지하철역에서 말할 줄 아는 커다란 황학이 갑자기 나타나 주인공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유유히 날아간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어진 비평에서 교수님은 이 소설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러니까 기계장치의 신은 고대 그리스의 극에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결말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교수님은 캐릭터는 독특하지만 이야기에서 이런 개입은 지양해야 한다고 비평을 마무리했다.

 

 언젠가 나만 깊은 곳에 침잠하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다. 미래는 희망이 없이 어두컴컴해 보였고, 만나는 사람 하나 없이 우울감에 빠져들어 갔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여기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조차 없어 괴로움에 죽어갈 때, 나는 내가 실은 황학을 기다린다는 걸 알게 됐다. 삶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나를 여기서 벗어나게 해 줄 초자연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천지를 개벽시켜 나를 이 상황 속에서 단숨에 구원해 줄 황학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럴 때마다 그 소설 수업을 떠올린다. 무섭고 두려운 것을 피해 안정된 것만 찾아  다니다가 내가 용기 있게 선택했던 그 수업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처음으로 알려주었던 그 수업을. 나의 다짐과 행동이 없이는 나를 이 상황에서 구원해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음을 잘 안다. 살아가다 보면 어쩌다 지하철역에서 황학을 만나는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로 황학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변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나는 소설 수업에 뛰어들었던 그때처럼 무모하게 선택하고 도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 수업에서 배웠던 가장 크고 중요한 한 가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혹시나 싶어 기다리던 황학을 다시 떠나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맛있는 세상을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