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점이 꽤 많은 편이다. ‘너도 점 빼 봐’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고는 했다. 그러나 점도 나를 나타내는 몸의 일부분이라며 피부과에는 절대로 가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얼굴도 아닌 손바닥에 있던 점을 제거했다. 굳이 손을 내밀어 보여주지 않으면 남들은 볼 수도 없는 점을 뺀 이유는, 무서워서였다.
3~4년 전이었다. 오른 쪽 손바닥에 작고 검은 점을 발견했다. 엄지와 검지가 갈라지는 지점에 생겨나 있었다. 처음에는 볼펜이나 매직 잉크인 줄 알고 지우려 했다. 문질러도, 비누로 씻어도 없어지질 않았다. 볼 때마다 기분이 께름칙했다. 점점 커지는 것도 같았다.
그 점이 거슬리는 것을 넘어서 무서워진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어떤 자료를 접했다. 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흑색종’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비대칭 모양이거나 경계가 흐릿한 점은 피부암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자가진단을 해 보고 흑색종이 의심된다면 조직검사를 해봐야 한다고도 했다.
손 안쪽에 있던 점을 눈 크게 뜨고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의심스럽다!
조직검사를 해서 떼어 내느니 그냥 더 커지기 전에 없애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흑색종’, ‘피부암’ 등의 단어를 검색창에 넣어본 지 이틀도 되지 않은 시점에 바로 피부과로 갔다.
점을 제거하는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진 촬영 후 간호사가 점이 있는 부위에 마취 크림을 발랐다.
“의사 선생님께서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하시면 레이저로 뺄게요.”
이미 마취크림에 덮여 고정 테이프로 점이 봉인되어 있는데 어떻게 보여주나 싶었다. 문제 없었다. 진료실에 들어가 보니 의사 선생님이 모니터 가득 내 손 사진을 띄우셨다. 그 분은, 내가 침을 두어 번 꼴깍 삼킬 동안 점을 살펴보셨다. 그러더니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셨다.
“빼입시다.”
레이저로 점을 뺄 때 ‘별로 아프지 않다’, ‘쉽다’ 하는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들어왔다.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덤덤하게 레이저 앞에 앉아 있던 나는 기계가 작동하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연필심 모양의 칼을 불에 달궈 피부 표면에 지지는 듯한 통증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아악!!!”
의사 선생님께서 레이저 작동을 잠시 멈추셨다.
“손이라서 마취가 잘 안 되고 아픕니다.”
그러곤 다시 레이저를 발사하셨다.
이 병원에 찾아와 점을 빼 달라고 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런데 레이저가 점을 제거하기 시작하자 격하게 저항한다. ‘나에게 고통을 가하는 일을 멈추시오!’라고 소리치고자 하는 나의 본능과 싸우기로 했다. 아픔을 견디고 소음 공해를 일으키지 않기로 했다.
만만치 않았다. 손에서 심장으로 심장에서 목구멍으로, 고통이 ‘잠재적 비명’으로 바뀌어 차올랐다. 그래도 ‘끝까지 참고야 말리라’, ‘이제 곧 끝나간다’ 하고 생각하며 소리를 꾹꾹 막았다.
그러나 참아도 참아도 의사 선생님은 도무지 기계를 끌 생각을 안 하셨다.
“아아!! 으아”
‘제발 좀 끝내줘요’란 원망이 비명이 되어 다시 튀어나와 버렸다. 그때 마침 레이저 고문이 끝났다.
미련하게 가지고 있어 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 없애버려야 훗날 걱정이 없는 것. 점 말고도 여럿 있었다. 당장은 별 문제가 없고 나에게는 익숙하게 자리했던 생각, 습관, 관계들 말이다. 그런 것들을 나에게서 떼어내 버리려 노력했던 시절, 몸부림쳤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눈을 찔끔 감고 소리를 지르게끔 하는 고통을 겪은 나에게 의사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해 주셨다. 앞으로 또 무언가를 뿌리 뽑을 용기가 필요한 나에게 두고 두고 위로가 되어줄 것 같은 말,
“잘 참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