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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보아 Aug 15. 2020

매직과의 작별, 다시 만난 반곱슬

온 가족이 반곱슬이다. 그 중 내 머리가 제일 관리하기 어려운 편에 속한다.      


어릴 때는 주체할 수가 없어서 어머니도 나도 고생이었다. 머리가 구불구불한 것은 둘째 치고 사방으로 붕붕 뜨고 부스스한 것이 문제였다. 다섯 살 쯤 숏컷으로 잘랐는데 머리가 더더욱 들떠버렸다. 머리를 누르기 위해서 아침에 괜히 베개를 베고 누워 있고는 했다. 마냥 편하게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요령껏 이리 저리 돌아누워야 했다. 머리가 어느 한 쪽은 떠 있고 한 쪽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머리를 겨우 기른 후에는, 늘 질끈 묶고 다녔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어머니를 따라 들어선 미용실에서 ‘매직’을 했다. 매직을 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지루했다. ‘고데기’로 머리를 펼 때는 그 도구를 처음 본데다가 명칭조차 몰랐기 때문에 ‘웬 인두 같은 걸로 머리를 지지나’ 하고 속으로 벌벌 떨었다.


그러나 결과물을 보고서는 미용실 원장님께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감탄했다. 구불거리던 머리가 일자로 쫙 펴졌을 뿐 아니라 사자 머리가 양쪽 귀로 착 붙었다. 게다가 찰랑거리기까지 했다. 거울 앞에 있는 게 정말 내가 맞는지 믿기지 않아 거울을 보고 또 들여다봤다.     


그러나 매직을 하고 싶을 때마다 쉽게 하진 못했다. 머리 길이나, 어떤 제품을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비용이 15만원~30만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 네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이었다. 여러 번의 매직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상해서 약이 잘 듣지 않아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매직으로 머리를 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 시술 과정에서 귀나 목을 살짝 데여도 잠깐 ‘움찔’하고 놀라기만 할 정도의 경지가 되었다.                 


매직을 했던 때의 뒷모습. 반곱슬 머리가 자라나와 위쪽은 살짝 굽어있다.


“여기 이 부분, 머리가 다 타버렸네요?”     


지난 1년 동안 미용실에 갈 때마다 들은 말이다. 사실이다. 다름 아닌 결혼식 날 머리카락의 80%를 태워버렸다.      

웨딩샵에서 머리를 담당했던 실장님께서, 처음에는 여유 있으면서도 무심한 표정으로 머리 모양을 잡아 가셨다. 고데기로 꾸불꾸불하게 컬을 넣으면서 말이다.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정말 나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스타일이 잡히고 있었다.      


‘결혼식 날 이렇게 빠글빠글 파마 머리 같은 스타일을 하는 사람도 있나?’ 하고 의문이 들었다. 점점 내 자신이 70년대 같아 보였다.     


‘결혼식 망했네’ 하는 생각으로 눈에 눈물이 찔끔 나오려했다. 속눈썹까지 붙였는데 울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오기로 버텼다. 그러나 암울함에 얼굴이 굳어지는 것까지 숨길 순 없었다. 내 생각을 읽으신 건지, 본인이 보기에도 마음에 안 드셨던 건지 실장님이 다시 내 머리를 도로 고데기로 펴기 시작했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올림머리는 다행히 예뻤다. 특히나 신부 한복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결혼식 후 내 머리는 오랜 기간 빳빳한 싸리 빗자루 상태였다.     


열로 구부렸던 머리카락을 또 다시 열로 펴서 올림머리를 하고 갖가지 제품을 써서 고정까지 시켰으니, 머리가 탄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내가 웨딩샵 실장님께 맡겼던 머리는 이미 염색과 매직으로 손상이 돼 있었던 상태였다.      




결혼식 후 갔던 미용실에서, 한 동안 버텨야 한다는 ‘경고’받았다.     


“지금 이 상태로는 매직 못 하죠?”

“어휴, 안 돼요, 안 돼. 돈 벌어야 하는 입장이니까 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는데 여기에 매직이든 파마든, 염색이든 하면? 그냥 머리 녹아요.”     


머리가 전체적으로 상했기 때문에 ‘상한 부분을 잘라 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고 염색, 매직 어느 것도 할 수 없으니 그냥 묶고 다니는 수밖에는 없었다.     


‘얼른 자라라, 얼른 자라라’     


귀 밑으로까지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 내려와서 다시 매직을 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 ‘굿 헤어’라는 다큐멘터리 자료를 통해 흑인들이 머리로 인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알게 됐다. 흑인들은 곱슬머리를 찰랑찰랑한 생머리로 만들기 위해 매우 독한 매직 스트레이트 약을 써야만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매직 시술을 하는 것으로 역부족인 경우 가발을 착용하기도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힘들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스스로가 참 모순적이었다. 13살 이후로 틈만 나면 머리를 펴려고 한 주제에 ‘통가발까지 꼭 써야 하나?’라고 생각하다니.         


그동안 나도 미(美)에 대한 사회적 잣대를 더 공고하게 만드는 데 동참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봤다.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보며 무의식 중에 보낸 ‘눈빛’들로 혹은 내 머리카락을 매직 약에 맡겨 놓는 행위로.      


더 이상 매직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청순하다, 단정하다’라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내 신체의 일부를 더는 열이나 약에 고통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끈질기게 머리를 길렀다. 결혼식 준비를 하다가 머리가 타버렸던 머리는 이제 거의 다 잘라냈다. 이제 머리를 낮게 묶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열심히 길러서 묶은 반곱슬 머리. 아래에는 아직 염색과 매직, 고데기에 시달려 상한 머리카락이 남아 있다.


매직을 안 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머리가 묶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머리가 단발이거나 숏컷 모양일 때는, 반곱슬 머리가 하루 하루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뜰지 모르기 때문에 관리가 두세 배로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도 매직과 작별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을까? 자신 있게 답하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매직을 각자의 필요에 의해서 계속 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도 매직 그만 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 머리를 펴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머리가 상해서 못 한다’라거나 ‘더 길러서 펴려고 한다.’라고 변명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매직을 꼭 해야 하나요?’, ‘반곱슬도 예쁘지 않나요?’하고 떳떳하게 되묻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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