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에 한 번 꼴로 시장에 간다. 반찬이 떨어져서 식재료를 사러 가기도 하지만 요즘은 어떤 제철 수산물, 채소 등이 거래되나 훑어보고 싶은 마음에 갈 때가 더 많다.
시장 입구로 들어가려면 생활용품점, 마트, 꽃집, 과일 가게, 빵집을 순서대로 지나야 한다. 그 다섯 군데를 지나기만 해도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은 거의 다 살 수 있는 셈이다. 다섯 개의 가게 중 특히 과일 가게에 자주 간다.
간판에는 ‘OO 과일’이라고 상호가 적혀 있다. 그러나 과일 외에 다양한 식자재를 판매하고 있다.
가게에는 따로 열고 닫는 문이 없다. 점포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 양 옆으로 갖가지 과일들이 진열되어 있다. 오징어, 갈치 등의 수산물이 얼음과 함께 상자 채 놓여 있을 때도 흔하다. 과일 상자나 바구니가 없는 가운데 공간에 발 딛고 안으로 입장할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으로 안에 들어가 보면 감자, 고구마, 부추, 마늘 등의 채소가 있다. 벽 선반에는 멸치액젓, 참기름, 들기름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가게에서 밖을 바라보았을 때 기준으로 오른쪽에 계산대가 있다. 사장님 두 분은 그 곳에 서 계시면서 가게 안팎에 있는 손님들을 대한다.
처음에는 그 가게를 부리나케 지나가기 바빴다. 그곳에서 파는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지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 가게 앞은, 나보다 시장을 20~30년 더 다니셨을 걸로 추정되는 분들로 늘 문정성시를 이뤘다. 행동이 재바르지 못한 내가 다른 손님들 틈바구니에서 과일을 골라 담고 값을 지불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들 것이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인 나는 ‘다음에 손님 없을 때 사야지’ 하곤 종종걸음을 쳤다.
“포도 오 천원, 포도 오 천원”, “고등어~ 싱싱합니다! 싱싱해요!”
괜히 걸음을 빨리한 이유는, 사장님들의 목소리가 너무 우렁찼기 때문이다. 여러 손님을 응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또 다른 손님을 부르기 위해 쩌렁쩌렁 소리 치셨다. 그 목소리를 듣고도 아무것도 안사고 그냥 간다는 것이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다 올해 여름부터, 그 과일 가게에서 먹거리를 사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때문인지 폭염 때문인지 시장 근처에 사람들이 예전처럼 많이 붐비지 않았다. 가게에 그만큼 일거리가 줄어서인지, 사장님 두 분이 함께 가게를 지키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지나갈 때마다 한두 분이 과일 진열대 근처에 꼭 멈춰 있기에, 손님이 아예 끊긴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다른 손님과 어깨나 팔을 부대끼며 물건을 고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내가 둘러보고 싶은 만큼 과일, 채소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구매하곤 한다.
지난 수요일에도 과일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샤인머스켓, 토마토, 바나나… 길가에서 과일들을 바라보며 무엇을 사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바구니에 담긴 게 가장 싱싱하고 달콤할까 보고 또 보면서.
생수병 사진 (출처: https://flic.kr/p/cjFX5)
“이거 물, 배달 안 해 주는가?”
“……”
“이거 생수가 이렇게 많은데?”
“……”
“아이고, 이거 이렇게 많은 걸 다 들고 가야 하나?”
짜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 고민할 때보다도 더 신중하게 과일을 고르고 있던 내 귀에 어느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나는 곳이 어딘지는, 굳이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과일 가게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마트일 것이었다. 자그마한 꽃집을 사이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바로 옆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과일 가게와 마트는 가까웠다.
마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스쳐지나갔던 생수병들이 몇 개 들이로 묶여져 있었는지 기억을 떠올리려 했다. 그리고 생수를 사려고 하시는 아주머니는 왜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인지도 추측하려 했다.
바깥에 마트 직원이 있으나 다른 일 때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아서? 아니면 큰 소리로 밖에서 질문을 되풀이 하시면 직원이 안에서 나와 설명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셔서?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나는 아주머니가 계시는 쪽을 향해 고개를 전혀 돌리지 않았다. 생수 배달 여부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데, 그 아주머니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정확한 답변을 해드려야 하는 운명에 처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어 번 정도 묻고는 그치실 줄 알았건만, 아주머니는 한 번 더 소리 내어 말씀하셨다.
“이거를 직접 다 들고 가야 하나?”
“그거를~직접~”
‘말소리’라기에는 ‘가락’이 있고, 그렇다고 ‘노래’라 이름 붙이기엔 단조로운 소리가 났다. 내가 서있는 곳 오른쪽, 아주머니 근처에서 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과일을 고르고 있던 자리 왼쪽에 계시던 사장님의 음성이었다.
아주머니와 아시는 사이인가 해서 사장님을 쳐다봤다. 사장님은 과일 진열대 근처에서 비닐봉투 뭉치에 시선을 고정하고 정리하시며, 혼잣말 같지 않은 혼잣말을 끝맺으셨다.
“그거를~ 직접 다 들고 가야지요~”
낯을 가린다는 핑계로, 모르는 아주머니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누구라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합리화로 가만히 서 있었던 나에게 과일 가게 사장님의 말은 충격이었다. ‘거리두기 대화’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은 독특한 방식도 새로웠지만, 아주머니께서 마치 메아리처럼 계속 질문을 던지시는 일을 멈추신 것도 신기했다.
아주머니는, 꼭 마트 직원이 아니더라도, 마트에서 생수 배달 여부에 대해 문의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으셨던 거다.
과일 가게 사장님처럼 상황에 딱 맞는 억양과 길이로 말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도 용기 내어 언젠가 대답해 주고 싶다.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은 사람을 또 만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