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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co Cat Jan 28. 2016

혼자 하는 여행이 가져다준 변화

라오스 비엔티엔, 방비엥에서

라오스 비엔티엔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날, 짐을 모두 짊어지고 걷고 있었다. 시내 구경을 한다는 게 버스 터미널에서 너무 멀리 나와버렸다. 앉지도, 더 걷지도 못한 채 잠시 서있는데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신호대기에 멈춰 선다. 길을 물은 뒤 혹시 태워줄 수 없느냐고 하니 너무나 흔쾌히 타라고 하신다. 거의 30분을 걸어왔던 길을 5분 만에 돌아왔다. 고생하는 것에서 약간의 희열을 느끼던 때가 있었다. 혼자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신세 지는 것이 굉장히 불편하고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 낑낑대기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도와주는 입장이 몇 번 되어보니 도와준다는 것은 사실 많은 경우에는 그렇게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에게도 기쁨이었다.


‘People are people.’ 사람들은 어딜 가나 똑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기가 많고 위험하다고 알려진 곳에서도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친절하고 순박하다고 알려진 곳에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엔 파리의 개선문처럼 유명한 빠뚜싸이라는 관광지가 있는데 역시나 사진을 찍어서 즉석으로 인화해주는 아저씨가 있었다. 어김없이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즉시 경계태세를 갖췄다. 그런데  호객행위는커녕 사진 찍으라는 소리 한마디 없이 어디서 왔느냐, 얼마나 머무느냐, 비엔티엔 아름답지 않으냐 하고 얼마간 대화를 나누고는 가버리는 것이다. 그를 가만히 보니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사람 좋은 미소만 주고는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꽃보다 청춘 때문에 물 반, 한국인 반이라는 방비엥의 블루라군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오토바이도 몰 줄 모르고 그렇다고 혼자 뚝뚝을 부를 만큼 돈이 많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전거를 대여해서 방비엥 시내에서 블루라군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길이 험해도 너무 험했다. 길 곳곳에 돌부리 때문에 자전거가 몇 미터를 가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덕분에 무릎은 다 까지고 자전거는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 옆으로 트럭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쌩쌩 달리는 외국인들을 보며 얼마나 서글프던지. 그렇게 가기를 몇 분, 4명의 라오스 젊은이들이 말을 건다. 그들은 오토바이 한 대에 두 명, 나머지 두 명은 자전거를 몰고 가고 있었는데 내 무릎의 상처를 보며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한 명이 자기가 내 자전거를 타겠단다. 거듭 고맙다고 말한 뒤 오토바이에 올랐다. 그런데 배기구 위치를 몰랐던 탓에 종아리 안쪽을 손바닥 만큼 데어버렸다. 덕분에 블루라군에서는 물 구경만 했다.


블루라군은  푸른빛을 띠는 깊은 물 위로 큰 나무가 가지를 드리워 사람들이 그 위로 올라가 다이빙도 하고 수영도 하는 곳이다. 뒤에 큰 돌산이 있어 뙤약볕 아래보다 훨씬 시원했다. 블루라군 주위로는 여러 채의 방갈로가 있어서 사람들이 앉아 쉬기도 하고 생선을 구워 먹기도 했다. 나와 4명의 라오스 친구들도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자세히 보니 그중 한 명은 월드비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우리도 생선구이와 꼬치요리를 주문했다. 라오스 특유의 짜고 맵고 상큼한 소스가 입맛을 돋운다. 라오스 친구가 내 종아리에 잡힌 물집을 보더니 끝이 뾰족한 식물을 따와서 터뜨려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전혀 계획에 없었던 돌산의 동굴로 향했다.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있는지도 몰랐던 곳이었다. 역시나 그곳에선 관광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지 탐험가 같은 인상착의의 외국인이 몇 명 보일 뿐이었다. 조명이 없으면 앞을 볼 수 없고 금방이라도 사람을 집어삼킬 것 같은 험한 지형의 동굴이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라고 말하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모험을 마치고 그들의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그곳에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들이 있었는데 모두 월드비전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중 한 아저씨는 영어를 굉장히 유창하게 했다. 우리는 함께 라오 비어를 마시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방비엥 시내로 돌아가는 길. 오토바이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어느 가정집에 들어가 잠시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집 옆에는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어둡고 텅 빈 공간에   어린아이들 둘이 밖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다. 왜 그들은 집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걸까. 라오스 친구들을 기다리던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아이들이 밖으로 나온다. 곧 나는 그들이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들인 것을 눈치챘다. 오랜만에 외부인을 만난 듯 그들은 내 팔과 얼굴을 쓰다듬으며 너무 반가워한다. 그렇게 반가워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낯선 사람에게 그렇게 사랑을 주는 순수함이 귀엽기도 해서 한참을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그렇게 놀고 있는 사이 라오스 친구들이 빨간약과 연고를 구해와 내 상처에 발라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탁 트인 벌판 쪽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이 날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받은 도움과 사랑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혼자 여행하는 것과 여럿이 여행하는 것 모두 장점이 있다. 그런데 유럽이나 북미 같은 곳은 나에겐 혼자 여행에 잘 맞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야경에도 더욱 외로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라오스를 여행하면서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혼자 두지 않는다.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더 대범해진다. 혼자 있기 때문에 말을 걸 때나 도움을 청할 때 신세 진다는 부담이 그렇게 크지 않다. 그냥 무작정 아무에게나 길을 물어보아도 괜찮았다. 그도 나도 잘 모르니까 처음 만난 여행자끼리  친구하고 같이 합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라오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옆자리 아주머니가 조금만 옆으로 기대도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라오스를 떠날 즈음에는 그 누구와도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준비뿐이랴, 대화하고 싶어서 안달 나 있었다. 혼자 여행이 나에게  가져다준 작은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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