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면 ‘그때 그냥 침묵하고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당신 생각이 난다. 내 아버지의 가장 큰 특징 하나를 꼽으라면 ‘과묵’ 혹은 ‘침묵’이었다. 이상하게도 당신이 침묵했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내 의식 안에서 팽창하는 듯하다. 당신이 나에게 잔소리하던 기억보다 침묵했던 기억의 골이 깊어서 선명하다.
그때는 그저 ‘아버지가 나이 들수록 말수를 줄이시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나에게 당신은 꽤나 잔소리가 심한 분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아들이 며칠짜리 여행이라도 가게 될 예정이거나, 당신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아버지는 나를 안방 윗목에 앉혀놓고 일장 훈시를 하셨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니, 여행의 의미는 이런 것이고, 그 목적은 이런 것이 아니겠냐. 명나라 큰 스승 왕양명은 여행을 다니면서 천하를 교과서 삼아 읽고 다닌 끝에 사상 통일을 이루었던 것 아니냐.’ 무릎 꿇고 있던 다리가 저리다 못해 내 몸과 분리감을 느낄 정도가 돼서야 아버지는 ‘그래 됐다, 가봐라’ 하고 나를 놔주곤 하셨다.
내가 결혼하고, 사춘기 아들한테 꼰대니 잔소리꾼이니 하는 불평을 듣게 될 즈음, 고향의 아버지는 만나 뵐 때마다 더 과묵해지는 기색이었다. 내 나이가 십 대나 이십대라면 당신의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젊은 시절 아버지처럼 내 아이의 정수리에 대고 꽤나 잔소리하는 ‘꼰대’ 세대가 되어서야 그나마도 그런 자각이 싹틀 수 있었다.
아버지가 일궈놓은 침묵의 벌판은 어머니와 형제들의 기름진 수다 농토가 되었다. 당신은 그 세대 남성들이 응당 누려왔던 권위의 언어를 내려놓음으로써 우리 집은 일찌감치 여섯 형제의 수다가 요란하게 오가는 시공간이 됐다.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침묵을 즐기는 듯했다. 내가 ‘침묵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근거는 당신의 표정 때문이다. 잔소리와 엷은 미소를 맞바꾸기라도 한 사람 같았다. 결혼한 형제들이 명절이나 제사 때 모여 앉으면 가끔 구원(舊怨)을 풀기 위해 모여든 집단 같기도 하다. 형제간에 갑자기 긴장감이 치솟을 때가 있다. 이 상황은 마치 닭싸움처럼 싱겁게 끝나곤 했는데, 되돌아보면 그 상황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미소 띤 침묵이 늘 함께 했었다.
권력의 서열은 곧 언어의 서열이기도 하다. 어느 시공간이든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 권력자다. 권력자에게는 훗날의 국민이 붙여주는 수식어가 있다. 독재자, 민주주의자, 이상주의자, 현자, 박애주의자 등등이다. 이 수식어는 권력자가 자신에게 집합된 언어의 톤과 범위를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따라서 후손이 붙여주는 꼬리표다.
그 점은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닐 것이었다. 권력 서열 1위가 당신임을 부정할 가족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는 ‘언어의 서열’ 1위 자리에 아무 관심이 없으신 듯보였다. 그래서 정말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냐고? 아니다. 돌아가신 지 십 수년이 지나도록 권력서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계신다.
침묵은 멈춤이지만 생각이나 감정의 멈춤이 아니다. 언어의 멈춤이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피부로 감촉하는 것에 대한 언어적 반응을 보류하는 것이다. 결과는 간단치 않다. 일단 시간적 공간을 챙긴다. 타 존재와의 긴밀한 교류를 잠시 멈춤으로써 물리적, 심리적 공간을 확보하기도 한다. 언어화된 생각이나 감정 표현을 정지함으로써 응축된 에너지를 갖추게 되기도 한다.
아버지의 침묵을 회상해 보면 침묵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 듯하다. 한 방향은 내 의식 바깥으로 열려 있는 침묵이다. 타 존재의 태도나 상태를 평가하고 판단하느라 경황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생산된 무음 상태다. 나는 이것을 외향적 침묵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내 의식의 안쪽을 주시하는 침묵이다. 자신의 생각을 주시하는 동안 발생하는 산소 같은 침묵, 냄새를 주시하느라 발생하는 침묵, 기억이 일어나고 있음을 주시하는 동안 발생하는 침묵, 말하고 싶은 욕구를 주시하는 침묵 따위다. 내향적 침묵은 일종의 자기 주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명상이라고 한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