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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Jul 14. 2021

13. 육아의 온도

가슴의 주인이 바뀌었다


 아이를 재우고 다음 텀에 먹일 분유도 미리 젖병에 담아 둔 후 고요한 시간, 오랜만에 글이라도 몇 자 적어 보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이를 낳고 나면 하루에 한 시간은 나를 위해 걷기 운동을 하고 틈틈이 육아 관련 글도 써보겠다는 나의 다짐은 말 그대로 멋모르고 했던 다짐일 뿐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50일을 맞이하였다. 신랑이 퇴근하기 전까지 내 한 몸 씻지도 못한 채 온전히 아이에게 매달려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만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니, 뭐든 주체적이길 원하는 나에게 참 가혹한 일상이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50일을 넘겼다


 제왕절개 후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 수술 부위가 채 괜찮아지기도 전에 젖이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있다는 설렘과 초유가 아이에게 좋다는 말에 의욕이 앞섰다. 출산 후 3일째 되는 날 오후, 수유실로 가서 축복이(태명)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렸다. 눈을 감은 채 뱃속에서 기억하는 엄마의 체취만으로 맹렬히 다가오는 아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정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몽글몽글했다. 처음이라 준비가 덜 된 엄마의 젖을 열심히 빠는 아이에게 느끼는 첫 대견함이었다. 엄마라는 말이 영 익숙해지지 않아서 태담을 할 때도 스스로를 엄마라고 칭하기까지 오래도록 망설였던 내가 “축복아, 엄마야.”라는 말로 화답하며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첫 수유를 오래 하면 아이도 엄마도 힘들다는 말에 아쉬움을 남긴 채 병실로 올라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불어버린 가슴을 부여잡고 밤잠을 설쳐야만 했다. 양껏 물리지 못한 채 자극만 주고 수유를 멈춘 게 화근이었다. 가슴 마사지를 하면 좀 나아진다는데 스치기만 해도 아파서 도무지 스스로 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국 조리원에서 매일 가슴 마사지를 받고 주기적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난 후에야 진정이 되었다. 세 시간에 한 번씩 아이에게 물리거나 유축을 해야 하는 모유 수유는 꽤 고된 일임에도 품에 폭 안긴 채 열심히 젖을 빠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하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중이다.


모유를 먹일 때 스르르 풀린 아이의 손이 내 손가락을 말아쥔다


  물론 의욕이 앞서는 만큼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지기도 한다. 열심히 젖을 물렸는데 마치자마자 허기를 참지 못하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버리는 아이를 볼 때가 그렇다. 그러나, 먹고 자고 싸는 일이 전부인 신생아의 본능 앞에 야속함을 느끼는 내가 옹졸하다는 생각에 금세 멋쩍어지고 만다. 아이가 먹기에 충분한 양의 젖이 돌지 않는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느끼는 미안함까지 더해 우울해지려는 순간, 아이에게 먹일 분유의 적정한 온도를 기가 막히게 맞추고 희열을 느낀다. 분유가 주식이 되고 모유가 애피타이저가 될지라도 아이가 모유를 찾고 엄마의 품을 좋아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예전 같으면 한 시간에 뚝딱 써낼 분량의 이 글을 작성하는 데 꼬박 3일이 걸렸다. 온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마음껏 아플 여유조차 없는 요즘, 아이의 컨디션에 맞춰 돌아가는 나의 24시간은 냉탕과 온탕을 수없이 오고 간다. 친정엄마가 다 해다 주신 국과 반찬을 데우고 꺼내는 것도 어려워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데다 운 좋게 아이가 자는 틈을 타 밥상을 차려놓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 울고 보채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다 식어버린 식사 앞에 서러워지는 날이 부지기수다. 작은 생명 앞에 기진맥진 허덕이는 스스로가 실망스러워 우울해지는 순간들 또한 쉼 없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오롯이 살아낼 수 있는 건 아이의 웃음소리와 쌔근쌔근 잠든 얼굴의 평온함과 열심히 성장하는 아이의 꾸준함 덕분일 것이다.


잠든 모습이 가장 예쁘다

 



 분유는 70도에서 가장 잘 녹고 40도일 때 먹이는 게 가장 좋다. 반성과 자기 합리화가 잦아지고, 아이와 둘이 같이 있지만 혼자 있는 듯한 고립감에 무력해지기도 하나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스스로 휘말리지 않도록 아이의 얼굴을 따스히 들여다보고, 출산 직후 아이의 볼을 마주 대며 느낀 아이의 첫 온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이의 낯선 세상에 부모는 세상의 전부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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