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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Sep 14. 2021

14. 백일의 기적은 개뿔!

엄마가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좀 더 정제된 제목을 쓰고 싶었지만, 백일을 갓 넘긴 아이를 키우며 느낀 내 감정을 잘 드러내기에 이만한 단어도 없어서 그냥 던져보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103일째 되던 날 새벽 세 시, 아이는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서 보채고 잠들기를 반복했다. 졸린데 깊게 잠이 오질 않아 칭얼거린다는 걸 이제는 잘 알기 때문에 폭 안고 어르고 달래기를 무한 반복하는데,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면서 왼쪽 귀에 대고 고막이 터져라 울어 젖히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지치고 짜증이 났다.


백일의 기적이라며? 백일이면 나아진다더니 개뿔!
언제까지 안아서 재워줘야 되는 거야 대체!


 말을 알아듣진 못해도 엄마의 말에 담긴 감정은 기가 막히게 눈치 채니 겉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고, 아이를 안은 팔에 은근하게 신경질적인 힘을 가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대신했다. 그러다 더 크게 우는 아이를 언제까지 우나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침대에 내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이기지 못할 걸 잘 알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엄마의 신경질만 고스란히 드러내 버린 것이다. 무안해진 마음에 서럽게 우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내 몸에 딱 붙어 잠 든 아이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손꼽아 백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나 보다. 시도 때도 없이 깨는 아이가 평정을 되찾고 밤에 통잠을 자기 시작하는 기점이 ‘백일’이니까 그때까지만 고생하면 한 고비는 넘기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빠른 80일 즈음에 아이는 새벽에 한 번 깨고 서너 시간 깊은 잠을 자기 시작했다. 비록 반쪽짜리 통잠이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루틴이 잡혀가는 것 같아 괜히 뿌듯하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남들보다 일찍 수월해졌으니 감사한 마음이면 충분한데 욕심이 났다. 백일이 되자마자 아이가 매일 같은 패턴으로 편안하게 자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랐던 걸까. 어른인 나조차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도 쉽게 바뀌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본능 앞에 욕심을 부리고 갑작스러운 기적을 바랐으니 나도 참 어리석다. 분노와 후회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하나밖에 없는 조카가 너무 예뻐 하루가 멀다 하고 오는 동생에게 언제까지 안아서 재워야 하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더없이 명쾌하다. “다 한 때야. 안길 때 충분히 많이 안아 줘.” 연년생 두 아이를 건강하고 바르게 키워낸 동생에게 편안히 안긴 채 엄마를 멀뚱멀뚱 바라보다 씩 웃어 보이는 딸에게 또 한 번 미안해져 무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백일동안 무럭무럭 잘 자랐다


 아이와 밀착된 채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아이의 성장이 내가 겪는 유일한 에피소드이자 성취감이 되어 조바심이 났던 모양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끼고 퇴근 후 운동을 하거나 지인 혹은 가족들과 여가 시간을 즐기며 내 의지대로 능동적인 삶을 꾸리던 내가 단조롭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 육아의 길로 접어들면서 겪는 성장통이라 스스로를 위로해야겠다.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가 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란 말이 뭔지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 모습에 내 삶 전체를 던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일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믿고 스스로를 응원하고 싶다. 더불어 뜻밖에 주어진 귀한 선물 앞에 늘 감사할 일이다.


 완연한 봄에 찾아온 아이가 여름을 고스란히 보냈다. 백일 동안 무탈하게 잘 자라준 아이의 기적과도 같은 성장에 감사하며 아이와 함께 맞을 가을의 선선함과 겨울의 쌀쌀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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