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나'는 어떤가?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 쏜 화살이 날아가듯 간다는 게 이런 걸까 생각하는 요즘이다.
아이는 얼마 전 36개월을 지났다. 세상에 나와 3년이라는 시간을 산 것이다.
고작 3년이라고 해야 할까 무려 3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감히 '무려 3년'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3년 동안 본 아이의 성장을 생각하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매 순간의 아름다움과 경이 가운데 아이는 앞을 향해, 미래를 향해 무럭무럭 자라났고, 자라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때때로 내 인생이 아들 찬양이를 출산하고, 그 이후에 겪은 몇 가지 일들 사이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때가 있다. 처음엔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그런 생각이 들어 눈물이 터졌다. 아이의 웃음, 울음, 자는 모습, 먹는 모습, 모든 고단함과 평화로움 사이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의문과 고통과 슬픔 사이에서 엄마이기 때문에 결단했다. 뒤돌아 보지 않고, 앞을 보며 걸어가기로.
그러나 늘 내 안에 고여있는 시간들을 풀어내지 않고는 제대로 나아갈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마다 뭔가에 홀린 듯 글을 썼지만, 번번이 이렇다 할 소득도 없이 끝내지 못한 글을 다시 품고, 일상으로 돌아가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혼자서도 쓰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도 쓰고, 공개한 글을 쓰기도 하고, 비밀리에 묻어놓는 글을 썼다.
내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글을 쓰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글을 쓰면서 치유되었나? 위로받았나?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가 겪은 일들 사이에서 의미를 찾아내 그것을 웃으며 말하듯 쓰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여전히, 전혀, 그렇게 되지 않지만 말이다.
산후조리원에 가서 보니, 산모들 대부분이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제왕절개 비율이 90% 이상이었던 것도 같다) 대부분 처음에는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결국,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다고들 했다. 그리고 그중 몇몇 산모들은 처음부터 선택제왕을 했다고 했다.
20대 산모 1명을 제외(이 친구는 너무나 회복 속도가 빨랐다)하고는 산모들 모두, 수술 부위로 인해 약간 엉거주춤 걸어 다니며 밥을 먹고, 아이를 돌보는 법을 배우고, 모유수유를 했다.
그중 제일 상태가 안 좋은 산모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허리도 못 펴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칼에 밴 것처럼 아팠던 나. 인어공주가 걸을 때마다 느꼈던 고통이 이런 거였을까? 조리원에 간지 3일이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밤이면 열이 나 옷을 갈아입으며, 하루 종일 추운 수술방과 그 안에서 겪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지고 있던 나. 무릎부터 손가락과 발가락의 모든 관절들이 시리고 아팠던 나.
제왕절개 수술 후 3일 째. 금요일 오전.
퇴원수속을 밟았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병원복을 갈아 입었다. 여전히 몸을 구부리거나, 혼자서 침대에서 내려오거나 눕는 건 힘든 상태였지만, 전날보다는 나았다. 어떤 자세든 처음에는 죽을만큼 아팠고, 두 번째부터는 견딜만해졌다. 몸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병원에 더 있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담당의에게 한번 거절당한 상태였다. 대학병원은 늘 병실이 부족하다. '출산'한 산모는 오랫동안 병상을 차지할 수 없다. 아이를 출산한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병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기에 '설마 무슨일이 있을까' 싶었다. 돌아보면, 이 때 이미 무슨 일이 있었을 수 있지만, '아이를 낳으면 이런건가보다'라고 생각했지 정확한 상태를 알지 못했고, 의료진들도 세심하게 예후를 살펴주지 않았다.
퇴원할 짐을 정리하고 아이를 데려오려는데 가슴이 찌릿찌릿 하면서 주르륵 뭔가가 새어나왔다. 모유였다.
우리 부부는 말그대로 우왕좌왕했다. "그 화장솜 같이 생긴거... 아... 그... 모유패드 좀 꺼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