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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초이 May 28. 2022

지난날의 기억(5)

자연분만은 못했지만 모유수유는 꼭 성공하고 싶어

퇴원은 금요일 오전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기고, 아이를 데려왔다. 내가 아이를 직접 안고 갈 수 없어 친정엄마가 도와주러 오셨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조리원에 입소했다. 남편은 일주일의 출산 휴가였다. 


조리원에 와서도 3일 동안은, 몸이 너무 힘들었다. 모든 관절이 다 시리고 아팠다. 끼니때마다 식당까지 걸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조차 버거웠으나, 수술한 산모들은 열심히 움직일수록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오전에 수술하고 오후에 의사가 회진을 돌며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수술 당일에도 무통주사와 진통제에 의지해 발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였다. 다음 날 낮까지는 무조건 침대 밖으로 나와 소변을 보러 가는 미션에 성공해야만 했다. 


바닥에 내려선 순간 느꼈던 몸속 모든 장기가 와르르 쏟아지는 것 같은 통증이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보단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단 세 번째가 낫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몇 번만에 아무렇지 않은 몸이 되진 않았다. 이를 앙 다물며 일어선 몸으로 지지대에 의지해 화장실로, 신생아실로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병원에선 하루에 한 번, 산모들에게 아이를 데려와 안겨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소변줄을 떼고 나면 불가했다. 모든 통증과 움직임의 버거움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며 침대에서 내려왔고, 걸었고, 걸을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낼 수 있었다면 이것이 이렇게 사무치게 기억나지도 않겠지. 죽다 살아난 사람에게 주어진 죽을힘을 다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조리원에 도착한 날, 남편은 며칠 만에 처음으로 푹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했다. 그제야 그는 몇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수술방 앞에서 얼마나 무서웠던가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했다. 남은 출산휴가 동안, 남편은 틈틈이 아이를 데려와 안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도를 해주었다. 처음으로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며 아주 미숙하고 또 어색하게 우리의 새 역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편 나는 여전히 배에 힘을 주지 못해 침대에서 일어서고 눕는 게 곤욕이었다. 그리고 조리원에 와서도 3일 내내 밤에는 고열과 땀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식후엔 타이레놀을 먹었고, 자려고 누우면 수술방에서의 일들이 떠올라 잠을 설쳤다. 아직 모유수유를 직접 하지는 못했고, 시간마다 유축기를 사용해 유축을 했으나 양이 많지 않았다. 비록 자연분만은 못했지만, 모유수유는 꼭 성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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