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친구_속초 정미현 님
문화기획자 | 빛나르고 대표 | 쓰담속초 운영
@light_largo / @ssdam_sokcho
삼삼오오 모여 속초 해변의 쓰레기를 줍고, 밥을 나눠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당연하게 줍고, 이웃을 만나면 자연스레 인사를 건넨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일들. 이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속초 청년들이 뭉쳤다. 빛을 나르는 사람들, 미현 님과 멤버들이 속초에서 만들어 갈 빛나는 내일이 기대된다.
미현 님은 속초가 고향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속초에서 활동하게 됐나요?
대구에 살던 부모님께서 2012년도에 속초로 이주하셔서 서울 생활하다가 가끔 부모님 뵈러 놀러 오던 곳이었어요. 그러다 제가 코이카 봉사단으로 해외에 나가 있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급하게 귀국하면서 부모님 집에 머무르게 되었죠.
미현 님을 붙잡은 속초의 매력이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에 많이 지친 상태로 왔는데 영랑호가 너무 예뻐서 속초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그래서 맨 처음 기획했던 프로그램도 영랑호 1인 여행이었어요. 워낙 속초는 바다와 산, 호수가 다 가까이 있잖아요. 저희 쓰담속초 로고도 보시면 산, 바다, 호수를 다 담고 있거든요. 제가 자연을 좋아해서 해외 봉사도 아프리카로 가기도 했는데 자연을 되게 가까이 두고 지낼 수 있는 이런 지역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주로 여행이나 문화 관련 활동들을 해오셨던 건가요.
네, 저는 클래식 작곡과 문화예술 콘텐츠를 전공했거든요.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다가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국제개발 협력 쪽으로 공부하게 됐어요. 빈곤이나 자원, 환경 등 국제사회의 문제들과 연결해서 관심을 가지던 중 귀국해서 속초에서 공모 사업을 하게 되었고, 그때 좀 더 환경이란 주제를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쓰담속초’ 커뮤니티가 만들어졌군요.
맞아요. 저와 속초 출신의 다진 님, 재환 님 이렇게 셋이 함께 지역에 ‘쓰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환경 쓰담’과 ‘마음 쓰담’ 이렇게 나눠서 지역의 환경을 돌보고 시민들의 마음을 돌보는 두 가지 축으로 활동해요, 당시 저희가 문화 사업으로 1인 여행 콘텐츠를 기획했는데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팀원의 제안으로 여행 콘텐츠에 플로깅¹⁾을 접목하게 되었어요. 다진 님과 재환 님 모두 해양 환경에 애정이 많고, 농‧어업 쪽 관심이 많아 관련 공부를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어요. 그리고 두 분 모두 손재주가 좋아서 수공예품이나 입간판 같은 것들도 직접 다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 명이 모여 환경을 주제로 시민들과 문화적으로 재미있게 푸는 방법을 고민하고, 활동들을 기획하게 된 거죠.
그럼, 초반에 커뮤니티로 시작해서 <빛나르고> 창업까지 하게 된 거예요?
네, 저희는 커뮤니티 안에서 다른 공모 사업들로 계속 활동을 이어왔고 비영리단체를 설립한 후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을 통해서 이제 <빛나르고>라는 법인을 설립하게 됐어요.
저는 원래 창업에 대한 생각은 계속 갖고 있었는데 어떤 조직 형태로 확장해야 할지 많은 고민 끝에 개인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법인의 형태로 창업했고, 이번에 예비 사회적 기업에도 선정되었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변화의 빛을 나르는 사람들’ 이게 저희 <빛나르고>의 소셜 미션이에요. 쓰담속초 때부터 그랬고, 빛나르고로 확장해서도 계속 그런 맥락 안에서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줍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 이웃한테 인사를 건네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 이런 쓰담 문화가 속초에 정착했으면 좋겠고 주변 지역까지 퍼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속초뿐 아니라 양양, 고성 등 인근 지역의 청년들과 정기적으로 모임도 열고 계시죠.
저도 올해 들어 뜬구름²⁾이란 모임을 하면서 지역 청년들이랑도 마음을 열고 일이 아닌 관계를 맺어가고 있어요. 제가 서울에 되게 오래 살았거든요. 제 삶의 터전이 서울에 있고 마음의 고향이었는데 이제 예상치 못하게 속초에 오게 되니까 아무리 가족이 곁에 있어도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무언가 숨통 트일 만한 장치가 있어야 살 수 있겠더라고요.
여기 살다 보면 청년들끼리 “또래가 없다.” 이런 이야기 진짜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아요. 지역 청년들과 모여서 밥 해 먹고 속초살이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스무 명 정도가 모였어요. 지역에서 청년 스무 명이면 정말 많은 편이거든요. 그때 가능성을 봤죠.
다들 비슷한 갈증을 느꼈나 봐요.
그러니까요. 최근 속초, 고성, 양양 지역으로 이주해 온 청년들도 많고 지역 청년의 수가 적지는 않을 거거든요. 또래들끼리 근처에서 같이 밥이라도 먹고 관심사 나누는 게 필요하잖아요. 모임 내에서는 평어를 쓰고 적당한 거리를 지켜가면서 편안하고 안전한 공동체로 만들려고 신경 쓰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지역팀들을 만나서 네트워킹하다 보면 저희도 좋은 사례들을 벤치마킹하게 되고, 저희 걸 만들 때 접목해 보려고 해요.
새로운 지역에 와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요?
만약 저희 셋 다 이주 청년이었다면 중간에 지치고 상처받아서 도시로 돌아가거나 포기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 생각해요. 다른 멤버들이 속초 토박이라 시행착오를 줄일 수도 있었고, 지역 어른들 도움도 되게 많이 받고, 예쁨도 많이 받고 있어요.
애초에 저희의 활동이 지역 주민들에게 집중했던 점도 조금 달랐던 것 같고요. 오히려 저는 기회가 더 많았다고 봐요. 저도 여기 와서 이런 글 쓰는 일도 했거든요. 아직 지역에는 이렇게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으니까, 서울보다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새로운 일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았어요.
예전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갖춰진 서울에 살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속초에 살아보니까 인프라가 없으면 직접 만들어 가게 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과 즐거움도 크고요.
최근 새로운 공간도 생겼다고요.
저희 공간 이름이 ‘더 블라인드 스팟’이라고 사각지대라는 뜻인데 공간이 위치한 골목이 중앙시장 안에 숨겨져 있던 골목이거든요. 이 건물도 몇 년 동안 비어 있었고요. 저희가 해변의 사각지대를 찾아서 쓰레기를 주워 오면서 돌봤던 것처럼 지역의 숨은 사각지대에서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뜻을 담았어요. 제로웨이스트 샵이면서 업사이클링 체험 공방이면서 사람들이 친환경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지역민들한테는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사랑방으로, 관광객들한테는 속초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크게 결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최종적으로 저희는 ODA 사업이라고 국제개발협력 쪽의 해외 원조 사업과 연결 지어 일해보고 싶어요. 아프리카 아이들의 물 운반을 돕는 ‘제리백’ 브랜드나 개발도상국의 수제품을 공정무역으로 판매하는 기업들처럼요. 환경이나 교육과 관련된 분야에서 연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계속 찾아보고 있어요. 저와 팀원들 모두 이런 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 공부하고 자격증도 따고 세미나 참석하며 역량을 기르고 있거든요. 연말에는 사내 워크숍으로 해양 환경 문제 관련해서 동남아 답사도 가보려고 계획하고 있고요. 속초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환경 문제는 결국 다 연결되고 세계적인 이슈니까요.
¹⁾ 플로깅(Plogging) : ‘줍는다’는 뜻을 가진 스웨덴어 Plocka upp와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주변을 산책하거나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 보호 활동
²⁾ 뜬구름 :속초(S), 고성(K), 양양(Y) 즉, 하늘(SKY)에서 둥둥 떠다니는 뜬구름 같은 청년들을 연결하는 청년 커뮤니티
*해당 인터뷰는 2023.08.25.에 발행된 뉴스레터 <안녕시골>에 실렸습니다.
https://stib.ee/Vjd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