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회사까지는 한 번의 버스와 두 대의 지하철을 탄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잠깐 들리는 카페에서, 사무실에서 퇴근 전에 들리는 슈퍼마켓에서도 기억하지 못할 얼굴들이 매일 스쳐간다. 직접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열 손가락도 되지 않지만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n분의 1만큼의 기운을 뺏긴 것만 같다. 그렇게 사람에게 지칠 때면 침대 머리맡에 있는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을 펼친다. 그녀가 안내하는 고고한 미국의 자연의 세계로 잠시 떠나본다.
메리 올리버의 문장은 해리포터의 마법 주문 같다. 그녀가 묘사하는 세계에 들어가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슬로 모션 효과를 넣은 것 마냥 일 초가 일 분이 되는 기적이다. 의도적으로 늘어난 시간은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준다. 편해진다.
모래곶과 우리 사이에 나눔의 표시가 될 만한 게 하나도 없고 드넓은 바다의 나른한 철썩거림만이, 그 풍부함과 반짝임만이 존재한다. (26쪽)
물빛이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팔딱팔딱 뛰는 생선의 움직임과 그 곁을 지나는 새들의 힘찬 날갯짓... 눈에 보이는 생명체 하나하나의 숨소리까지 집중한다. 슴새, 바다제비, 여우, 올빼미, 아메리카원앙... 낯선 미국의 풍경이지만 세밀하고 친절한 문장이 나를 안식으로 이끌었다.
나는 여기 단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서 살며 내 생각들을 생각하고 큰 뜻을 품는다. 일어서기 위해, 나는 그 위에서 일어설 들판이 필요하다. 깊어지기 위해, 그 아래로 내려갈 바닥이 필요하다. 물질세계가 그 초록과 파랑의 색조 아래 지니고 있는 항상성은 나를 더 훌륭하고 풍요로운 자아로 이끈다. 그걸 고양이라고 부르자. (139쪽)
메리 올리버는 자연으로부터 인생의 교훈을 건져 올리는 낚시꾼이다. 어느 여름 해당화를 바라볼 때, 올빼미와 여우, 가자미, 야생굴뚝새와 같은 야생동물과 마주할 때, 지나간 토네이도를 떠올릴 때 그 순간을 성찰하며 의미를 되짚는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그녀만의 리츄얼이고 나에게는 명상처럼 다가온다. 눈앞의 모니터와 디스플레이가 아니라(물론 지금도 보고 있지만) 그 너머의 들판과 바다를 향하는 마음, 그 마음을 이끄는 명상.
해당화는 여름 햇살 속에서 꽃봉오리들과 윤기 흐르는 주름진 잎들을 주렁주렁 달고 쑥쑥 자랐다. 그러다 자신의 달콤한 무게를 못 이겨 축 늘어졌다. (69쪽)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 폭풍우 때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고,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을 느낀다. 역경, 심지어 비극도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스승이 된다. (61쪽)
고요한 날에도 고요하지 않은 날에도 자연의 풍경 속에서 배울 만한 것이 많다. 이런 그녀의 한결같은 태도를 보며 나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한다.가까운 바다나 강으로라도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 자연은 도피의 대상이었다.
2018년 서점 완벽한 날들에서 완벽한 날들을 들고
이 책을 처음 만난 속초의 독립서점 '완벽한 날들'을 생각한다. 무척 추웠지만 하늘이 맑았던 2018년 2월 친구와 속초 여행을 떠났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속초까지는 고속버스로 약 두 시간 정도 걸렸다. 그곳에서 이 책의 이름과 같은 서점, '완벽한 날들'을 만났다. 당시의 메리 올리버란 작가나 이 책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몰랐지만 '여행'이라 기운에 취해있었다. 서점의 한 구석에 앉아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고 서점의 이름과 같은 책을 구매하는 낭만적 사치를 부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속초 동명항의 파도를 본 순간, 아주 살짝 메리 올리버의 기운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거센 겨울 파도와 바닷바람에 휩쓸리며 느낀 스스로의 나약함, 그 순간을 당시에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동명항의 파도가 좋았던 건 파도 그 자체보다 바위와 맞닿았을 때이다. 동해의 파도는 신기하게도 모래사장이나 방파제라는 그어놓은 끝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바다 곳곳의 바위에 부딪치며 서로 다른 모양의 파도를 그렸다. 해수면 높이의 바위에는 돌리네처럼 움푹 파인 파도가 만들어졌는데, 아직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교활함'에 대해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사회적인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 인간의 교활함은 모든 인류가 타파해야 할 사회악이라 새겨왔다. 공존의 조각보에 스크래치를 내고, 인간의 행위를 마름질로 얼룩 지운다. 인간이 교활해지는 이유는 그들이 살아가는 틀이 변하지 않으니 그 안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그 역사가 있었고, 그 흐름의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믿는다. 변화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동해의 바위들처럼 바다의 듬성듬성 정수리를 드러내며 자기만의 흐름을 낼 수 있다고.
회사에 들어간 지 딱 1년이 되던 때였다. 평소에 만나보지 못한 성향의 사람들과 '일을 하며' 속을 끓이고 있었다. 그때 속초의 파도를 보며 얕은 교활함과 그것을 뒤덮을 수 있는 힘찬 파도의 에너지를 생각했다. 마치 메리 올리버가 된 기분이었다. 각자 놓인 배경은 달랐지만 서로 자연을 보며 배우고 또 배웠던 것이다.
그 뒤로 이 책은 여전히 내 머리맡을 지키고 있다. 마치 수양을 하는 종교인처럼 틈틈이 책의 아무 곳이나 펴보고 몇 문장을 읽어보고 마음에 적립한다. 요즘도 읽으면 처음 보는 듯 생경한 문장을 만난다. 이 작가는 1935년에 태어났기에 '완벽한 날들' 이외에도 많은 책을 냈고 한국에도 여럿 출판되었다. 하지만 다음 책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이 책만 붙들고 있다. 반짝이는 물결이 흘러넘쳐 내면을 더욱 가득 채울 수 있도록 책의 문장을 읽고 또 읽는다.
2018년 속초의 동명항에서
*이 책은 속초의 '완벽한 날들'에서 구매했습니다.
*9회말 책아웃은 2023년에 꾸준히 연재하는 저만의 책 읽는 이야기입니다. 다음 편은 백수린 작가의 소설 여름의 빌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