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되고 40일 뒤에 쓴 글
안...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11개월 만이다.
2016년 3월 31일에 처음이자 마지막 글을 올렸고, 작가 승인을 340일 전에 받았었다.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 식의 가벼운 마음으로 작가 신청을 했었고 예상외로 금방 승인을 받았고 일기장 한구석에 끄적거렸던 글 한 편을 다듬어서 올렸다. 하루에 1명, 2명 정도 되었던 조회 수가 어느 날 100명이 넘어서서 콩닥콩닥하는 가슴 부여잡고 알아보니 글이 다음 브런치 코너에 올라와 있었다. 브런치만의 무작위 알고리즘인지, 나와 동갑내기 브런치 에디터님께서 공감하시고 선정해주신 건지, 어떤 기준으로 무슨 이유로 올라갔는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컴퓨터 앞에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췄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음 편을 쓰려고 보니 머리가 하얘지고 '미룸병' 증세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지나도 오지 않을 '내일'로 일을 미뤄버리는 바로 그 미룸병.
2017년 1월 1일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을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시작했다. 10, 9, 8, 7, 6... '1'을 외치는 순간 휘황찬란한 오로라 빛이 모두를 뒤덮고 서른이 되는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세일러문처럼 공중에 뜰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처럼 엄청난 변신을 할 것만 같았다. 왜냐면 우린 이제 서른이니까! 서른은 마법의 숫자니까! 나는 달라져야만 하니까! 하지만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016년 12월 31일의 나는, 2017년 1월 1일의 나와 같았다. 똑같이 미련하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했다. 그래서 설을 기다렸다. 하지만 당연히 설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왜냐면 변화는 언젠간, 자연스럽게, 알아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내가 꿈꾸고 소망하는 그 대단하고 엄청난 변화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01. 채우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싶다. 구체적으로 좋은 소설을 많이 읽고 싶다. 이왕이면 아주 오래된 고전 소설로. 업무상 읽거나 구체적인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밑줄 쳐가며 교과서 취급하게 되는 책들 말고 몇백 년이 지나도 공감되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한 책들이 읽고 싶다.
The task of literature: to put a finger on emotions that are deeply our own, but that we couldn't have described on our own. (Alain de Botton)
문학의 과제는 독자 스스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
건강한 식습관을 되찾고 싶다.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피곤한 몸에 보상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불량식품으로 하루 세끼를 채운 지 너무나도 오래되었다. 아주 맵거나, 아주 짜거나, 아주 단 자극적인 음식으로 취향이 바뀌면서 건강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좋지 않은 식습관과 더불어 운동 부족, 수면 부족, 수분 부족….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이기에 좋은 것으로 채우고 싶다. 차곡차곡 하나둘씩.
02. 담아내기
글과 사진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위해 습관적으로 찍고 쓰는 것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때 그 날의 마음과 생각을 기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꾸준한 연습이 중요할 것 같다. 하루에 한 장 찍고 한 장 글로 채우는 것으로 시작해볼까. 이왕이면 다시 그림도 그리고 싶다. 기록에 목마른 이유는 단순하다. 더는 머리에 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작년 이 마음 때 내가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은데,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졌다고 믿고 싶은데 아무런 기억이 없다. 뉘우침 또는 반성의 목적 말고도 행복하고 뿌듯하고 신나는 기억도 희미해진다. 몇 년 같았던 며칠 만에 도착한 편지를 우체통에서 꺼낼 때 너무 기쁜 나머지 얇은 봉투를 마치 너처럼 끌어안았던 그 날의 기억, 멋지다고 엄지 두 개를 치켜세우며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에 실룩샐룩 올라가는 입꼬리를 손으로 가렸던 그 날의 기억…. 그 외에도 분명 마음이 사르르 녹듯 따뜻한 기억이 많을 텐데.
03. 비워내기
후회를 하거나 미련을 갖는 편은 아니지만 분명 놓지 못하는 기억의 조각들이 있다. 굉장히 아팠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느낌 한 개, 마음 깊숙이 숨겨둔 조각조각들이 아주 가끔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마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시리다. 예상치 못하게 공공장소에서 그 감정에 휩싸여 거리 한복판에서 넋 놓은 적도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더는 마음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할 필요는 없다. 좁은 캠퍼스에서 마주칠 일도,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할 일도 없으니까. 마주하거나, 비워내거나. 더는 붙잡아놓고 담아둘 수는 없을 것 같다.
거창하게 모든 것이 완벽히 준비되어있는 상태를 핑계 삼아 미루고 미루는 것보다 어설프더라도 부족하더라도 일단은 시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번 브런치 글도 일종의 예고편이다. 다음에는 꼭 실천의 기록을 담아보고 싶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니까. 시작이 가장 어려우니까. 시-작!
11개월만의 어설픈 안녕,
아직은 만 28세, 그러나 서른,
Noelle
다시 한번,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