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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my Nov 13. 2021

호주 '집안일 연수'를 통해 깨달은 것.

엄마가 되어하는 자기 계발에 대한 고찰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 무덤을 발굴하기 위해 사막 여기저기를 파던 모습이 마치 뭐든 하나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배우고 다니던 내 모습 같았다. 퇴근하면 항상 무언가를 배우러 다녔다. 나의 배움은 장르가 다양하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드럼, 기타, 플라멩코, 발레, 인문학, 창업, 회계 등등.


  외국계 회사라 종종 영어 쓸 일이 생겨서 영어공부는 꾸준히 해왔다. 유명하다는 학원, 덜 유명하지만 야금야금 입소문 탄 학원, 내 급여의 두배가 넘는 학원까지. 하지만 그 무엇도 나를 영어에서 자유롭게 해주지 못했고 나는 결국 최후의 보루로 어학연수를 결심했다. 호주 어학연수를 준비하던 중 아기가 생겼다. 결혼 10년 만에.


  엄마가 되니 내가 배워야 할 것도 바뀌었다. 영어보다 요리, 엑셀보다 청소. 우여곡절 끝에 나는 퇴사 후 6개월 된 아기와 함께 호주로 떠났다. 어학연수가 아닌 집안일 연수를 위해. 외국까지 가서 집에서 애만 보긴 싫었다. 물론 호주의 비싼 생활비와 더 비싼 최저임금도 이유가 됐다. 나에게 당장 필요한 자기 발을 하기로 했다. 식당에서 설거지하기. 사무실에서 청소하기. 영어공부는 남편에게 양보했다.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본 경험이 있으니 괜찮았다. 오전에 남편이 학교에 가면 내가 애를 봤고 남편이 오면 저녁에 내가 일을 갔다.


개발: 지식이나 재능 따위를 발달하게 함
계발: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
- 네이버 국어사전


  익숙하지 않은 걸 익숙하게 만들기. 진정한 자기 개발이었다. 설거지가 제일 싫어 집에서 밥도 잘 안 먹던 내가 하루 종일 회전초밥집 주방에서 허리 한번 펴기도 힘들게 접시는 씻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하던 내가 그들이 모두 퇴근한 사무실을 청소했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청소 일은 화장실 거울에 물자국 안 나오게 닦는 걸 못해서 결국 잘렸다.


  우여곡절 끝에 장애인 복지센터에서 일을 하게 됐다. 거동을 못하는 장애인 4명이 모여사는 집에서 그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아기를 키우는 나에게 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일로 새로운 성취감을 느꼈다. 교환학생에 가기 위해 토플 점수를 받았을 때, 자격증을 땄을 때, 드럼을 배워 무대에 섰을 때 등 내가 잘해서 해냈을 때 받았던 느낌이랑은 달랐다. 남을 돕는 행위에서 오는 따뜻한 성취감이었고 일도 이렇게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런 게 적성에 맞는 일이구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은 뉴질랜드에서 온 시크한 친절함이 매력인 나(가명)와 일하던 중이었다. 퇴근 30분 전 돌보는 분들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있었다. 각자 명씩 맡아서 일을 하는데 안나가 나를 불렀다. 더프(가명)가 똥을 엄청나게 많이 싸서 도저히 혼자서는 처리할 수 없었다. 더프를 옆으로 눕혀서 내가 잡으면 안나가 엉덩이를 닦았다. 더프는 50넘은 할머니였고 아기를 돌보는 것과는 분명 달랐다.


  언젠가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나는 어릴 때부터 비위가 약했고 옆에 아이가 콧물을 마신 걸 보고 더럽다고 게워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분명 이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년 넘게 이 일을 한 안나도 힘들어했다. 역한 냄새에 구역질도 났지만 다행히 잘 참았다. 깨끗이 정리가 끝나고 퇴근하기 전 나는 더프에게 인사하며 더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변비에 시달렸는데 잘했다고 시원하게 잘 잘 수 있겠다고. 그날 퇴근길에 레벨업 한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자기 계발하면 많이들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늦은 밤까지 책상 앞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호주로 떠나기 전 나의 자기 계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 돌아보니 나는 자기 계발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계발 수업'수강'러. 자기 계발 수업'수강증'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고민 끝에 돈을 결제하고 나면 이미 그 내용이 내 머릿속에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나의 호주 연수 이야기는 이런 거랑은 다르다. 지금 나에겐 이게 더 자기 계발이라는 단어랑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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