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오전 알바일상
오전에 알바를 시작하며 확실한 성공으로 하루를 열게 되었다. 일터의 업무는 역할 분담이 확실해서 내가 해야할 일만 마무리하면 다 잊어버리고 퇴근할 수 있다. 실수가 있었든, 무례한 손님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간에 세 시간 뒤에는 예쁜 빵들로 가득찬 진열장을 보며 가게를 나온다. 아침 멤버는 사장님, 베이커리 기사님, 알바생 3인조로 꾸려진다.
사장님은 공대출신 40대 후반 여성분으로, 10년째 이 가게를 운영중이다. 체구가 조그맣지만 손이 빠른 사장님은 샌드위치를 포장하는 일을 주로 하는데 틈틈이 가게를 뽈뽈 돌며 진열장을 정리하고, 사고를 수습한다.(주로 사고치는 사람은 나..) 일할 때는 길다란 위생모자를 쓰고 계시는데 동그란 안경과 어울려서 만화 캐릭터 같은 인상이다. 그 전에는 학원에서 쪽집개 과학강사였다고 한다. 공대 여자라고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쿨한 이공계생'이라는 고정관념에 딱 맞게 매사 합리적인 분이다. 내가 계산을 잘못하거나 케잌을 잘못 만져 망가뜨리는 등 종종 실수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딱 필요한만큼만 지적한다. 그래서 사장님과 붙어서 일해도 마음이 편하다. 내 실수 하나에 자기 감정을 더해서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버렸던 많은 고용인들이 떠오르며 올해는 인복이 따르는구나 싶다.
베이커리 기사님은 사장님의 여동생으로, 세 사람 중 제일 바쁘다. 하루 동안 판매할 모든 빵을 반죽하고 오븐에 넣고 튀김기로 튀기는 가장 핵심업무를 한다. 기사님은 내내 조리대 앞에 있는다. 기사님이 밀가루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나머지 두 멤버가 기사님을 서포트한다. 샌드위치 포장이 끝난 사장님은 냉판을 닦아주고, 나는 오전에 도착한 생지를 조리실에 가져다 드리거나 냉판을 정리한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출근한 기사님은 이어폰을 끼고 통화하며 빵을 만들고 있을 때가 많다. 바깥과 분리된 공간에서 빵만 보고 하루를 보내는데 그래도 늘 통화할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생각한다. 기사님은 종종 자투리 소시지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시는데, 일부러 챙겨주시는 게 고맙기도 하고 다음에도 또 콩고물이 떨어질까 싶어 괜히 오버스럽게 '와~ 너무 맛있겠어요.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한다. 표정이 별로 없는 기사님도 이럴 때는 쑥스럽게 웃는데 그때마다 어려보이고 의외의 모습이 귀엽다. 내가 k-장녀라 그리 보이나? 나보다 열 살 남짓 많은 기사님에게서 동생미가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멤버는 알바생 혜린이들. 내가 나오지 않는 날은 동명이인의 혜린씨가 출근한다. 알바생들은 진열장 정리와 빵 포장을 하는 게 일이다. 가게엔 늘 인기가요 모음집을 틀어놓는데템포가 너무 빠르고 악기도 많이 들어가 있어 내가 일을 하는건지 음악이 일을 하는건지 모를 정도다. 처음에는 그 느낌이 좋지만은 않았는데 이제는 노동요가 없으면 일이 잘 안되서 출근하자마자 음악부터 튼다. 나는 빵을 좋아하지만 요즘엔 건강을 위해 조금 절제하는 편이다. 갓 나온 빵의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를 맡고, 포장할 때 보들보들한 감촉을 느끼면 어느정도 욕구가 충족된다. 빵이 충분히 식은 후 포장해야 상하지 않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봐야한다. 그렇다고 마음놓고 있다가는 중간 중간 손님들 응대하다가 근무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도 생긴다. 근무시간 초과하면 나도 지겨워지고, 사장님도 돈을 더 쓰게되니 가급적 정해진 시간에 마치려고 한다.
포장할 때 제일 무서워했던 빵은 모카크림식빵이다. 커피맛 식빵 사이에 크림이 넘치게 발라져있어서 잘못하면 봉투에 크림이 덕지덕지 붙어버린다. 초반에 봉투에 넣었다 뺐다 몇 번을 했는데, 그 빵은 결국 판매되지 못하고 재고처리하게 되었다. 만지작거리느라 꼬질꼬질해졌는데 얼마나 죄송하던지. 빵에게도 미안하고. 요즘도 모카크림식빵을 포장할때는 미간에 주름생기도록 집중하지만 그래도 보통 한 번에 성공한다. 가장 귀여운 빵은 커피번이다. 로티보이가 유행하면서 같이 유행한 빵인데동그랗게 볼록한 커피색 겉면에 안쪽은 비어있는 모양이다. 정사각형 봉지에 넣어 끝을 둥글게 말아서 밀봉하고, 아래쪽은 삼각형으로 접어준다. 스티커로 마무리해주면 곰돌이 같은 포장 완성이다.
요즘 활력이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천성이 느긋한 편인데 바삐 움직이는 게 적응되다 보니 시간관념이 새로 생겼다. 퇴근할 때 보면 언제 이 많은 일을 했나 싶다. 알바하는 템포로 집안정리를 해보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된다. 뭐든 꾸준히 하면 변화한다는 걸 체감한다. 여전히 느긋하게 지내는 게 좋고, 음악도 단순한 미디엄 템포를 좋아하지만, 바삐 지내며 벅적벅적한 음악도 도움이 된다. 아직 내가 모르는 세상의 요령이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