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 사과 속 비밀
며칠 전 출근준비하는데 등교지도를 함께하는 실무원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제 일어나서 늦을 것 같으니 얼른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문자 속 선생님은 굉장히 당황하신 것 같았다. 아직 20대 초반 대학생이고 학교 근무도 처음 해본 다고 이야기했던 터라, 만나면 아무렇지 않다고 호들갑 떨면서 안심시켜 드려야지 했는데. 막상 마주치자 별다르게 미안한 기색은 없었다. 내가 너무 꼰대 같은 생각을 한 건가? 나라면 안절부절못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이미 서 너번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문자로 이미 미안함을 표현했으니 굳이 같은 인사를 또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사과를 쉽게, 많이 하는 편이다. 이런 패턴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20대 초반에 네팔로 봉사활동을 갔는데 동료들 중에 유독 나를 많이 놀리는 친구가 있었다. 두 손을 모으며 ‘미안 미안~’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내 말투를 흉내 냈다. 따라 하는 게 하마터면 사과하는 모습이라니. 내가 그렇게 사과를 많이 하나?
우리가 지낸 마을은 물자가 부족해 양동이 한 바가지로 샤워를 끝내야 했고, 해가 지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 불편들은 생각보다 금방 적응이 되어 기름으로 떡진 머리를 하고도 히히 웃으며 지냈다. 그렇지만 하루종일 사람들과 붙어있다 보니 사소한 일들로 신경을 긁는 일들이 생겼고 그때마다 나는 먼저 사과하며 불편한 상황을 벗어났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너무 착해서 그런 버릇이 있는 줄 알았다.
사과하다가 더 갈등이 깊어진 적도 있다. 폴란드로 계절학기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학기가 끝나고 한국에서 같이 온 친구와 이어서 유럽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 친구는 계획적으로 움직이며 랜드마크들을 꼭 방문하는 타입이고, 나는 그때그때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성향 차이 때문에 여행 내내 잡음이 있다가 마지막 여행지인 나폴리에서 대판 싸우게 되었다. 폴란드에서 알게 된 이탈리아 친구를 만나 피자를 먹으며 오후를 즐겁게 보낸 날이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몰라 아쉬워하던 차에 친구가 자기 집에서 하루 묵고 가라고 초대했다. 게스트하우스도 질린 데다, 현지의 가정집을 가본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는 경험일 것 같아 나는 바로 수락했다. 친구랑 같이 가니까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는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의 집에 묵는다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숙소도 예약해 둔 터라 취소하면 수수료도 생기고 번거로운 일 만들기 싫다고 했다. 양보 없이 팽팽하게 갈등하다 결국 친구는 갈 거면 혼자 가라고 했다. 싸우느라 진이 빠졌고, 혼자 가려니 어색해서 결국 나도 숙소로 돌아갔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 상황이 유지되는 게 불편해서 사과를 선수 쳤다. 친구도 마지못해 받아주고 상황이 정리될 줄 알았는데, 내 말은 무시하고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가버렸다. 그대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말도 섞지 않고 각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 친구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당시 내 언어의 겉모습은 사과였지만 열어보면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친구는 나보다 더 감정이 격한 상태였던 것 같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사람에게 사과를 받으라고 하는 것이 강요로 느껴졌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나의 사과에 담긴 다양한 메시지들을 알아차리며 웃음이 나올 때가 종종 있다.
최근에는 돌봄 교실 출근할 때 자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기회만 되면 '죄송합니다~!!!!!'하고 허공에 소리 지르고 싶다. 나는 편한 술자리에서도 10명이 넘어가면 기가 빨려 얼마 있으면 구석에서 텔레비전 보듯이 감상하고, 집에 언제 갈지 시간만 체크한다. 컨디션 나쁠 때는 5명도 힘들다. 돌봄 교실은 15명 안팎의 어린이들이 한 시간 내도록 종알종알 말하는데, 내가 숨으면 안 된다. 큰 목소리로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해야 하고, 혼낼 때는 강하게 혼도 내야 한다. 그러나 교실에서 30분 지나는 순간 점점 눈빛이 흐려지고 귀도 멍해진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너무 귀엽고 소중해서 화를 잘 못 내겠다. 출근해서 3시간 연달아 수업하고 오는데 요즘엔 버거움을 많이 느낀다.
그런데 이게 내가 그렇게까지 죄송해야 할 일일까? 비록 내가 아이들을 휘어잡는 능력 만렙의 선생님은 아닐지라도, 수업 준비 열심히 해가고, 심심한 애들 있을까 봐 색칠공부며 놀이재료까지 챙겨가는데 이 정도면 70점은 쳐줄 수 있다. 학교에서 느끼는 사과충동은 실력을 과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대로 잘하고 있음에도 먼저 죄송하다고 말하면, 나는 원래는 더 잘하는 사람이고 기준이 높은데 거기 못 미친다는 걸 어필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치밀하다.
요즘은 사과하고 싶은 충동이 들면 딱 한 번만 하고 참는다.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되는 상황에서 여러 번 계속 사과하는 것은 방귀 뀌는 것이랑 비슷하다. 내가 시원해지려고 하는 것이지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어떤 날은 싸울 수도 있다. 내가 잘할 줄 알았던 일이 알고 보니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완벽한 하루하루가 아니라, 오늘 하루 망쳐도 그렇구나 하며 웃는 일! 방귀보다 웃음이 많은 사람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