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인지 제대 후인지 정확히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의 여자 아이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이었는데, 내용보다는 제목의 인상이 워낙 강렬하여 ‘100%의 짝’에 대한 환상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게다가 ‘4월의 해맑은 아침’ 이라니…)
결혼하기 전 만난 기간까지 포함하여 10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상대방이 100%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내가 온전한 나일 수 있는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언제 어디서든 늘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인 사람이 있는 반면, 주변의 상황과 사람을 보아 가며 자신의 모습을 발현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비교적 후자에 가까운 편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본 모습의 발현’이 행복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핏 보면 외향적인 사람인데, 나보다 더 말수가 적어서 끊임없이 나를 떠들게 만들었던, 처음 만난 날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 농담에 어깨를 들썩이며, 자지러지게 웃는 아내의 모습이 좋다. 늘 진지한 것 보다는 한 번씩 피식거리게 되는 상황을 좋아하고, 엄격함보다는 따뜻함이 내 본성과 맞기 때문이다.
살면서 경험한 가장 행복한 생일은 작년이었다. 회사 창립 기념일이기도 했던 그 날, 큰 아이는 학교에,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서 수년만에 대낮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경의선을 타고 홍대입구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셀카를 찍고, (워낙 맛있게 먹어서) 함께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던중식당에 가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손잡고 걸으며 끊임없이 떠들고 장난쳤던 그날이 그렇게 좋았다.
우리에게 아이들이 없다면 지금보다는 다소 건조해지겠지만,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의 깊이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수년 동안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있어도 상대방이 100% 일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좋은 모습이, 관계가 같은 사이클을 몇 번 더 돌아도 괜찮겠다는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