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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un Jul 24. 2023

현관 도어록이 그립다

네덜란드 이모저모 

타지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에서는 별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그립다. 

한밤중까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던 24시 편의점, 정겨운 길거리 시장 풍경, 그리고 

손가락으로 '따닥따닥'거리며 누르는 도어록이 그렇다. 


네덜란드에서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늘 손이 바쁘다. 

문을 열 때마다 부랴부랴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던 열쇠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생활을 시작하는 한국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열쇠문화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유럽지역에서는 아직까지도 도어록보다 열쇠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고, 신뢰하는 듯하다.

실수로라도 열쇠를 집에 둔 채로 문을 닫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체험은 보너스다. 


바야흐로 4년 전, 팬데믹이 일어나기 전의 시기였다. 떡볶이의 맛을 궁금해하는 더치 친구 한 명과 함께 호기롭게 '떡볶이를 만들어 주겠노라'선언하고 집으로 초대했다. 

햇빛이 쨍쨍하고, 바람도 살랑거리는 게 밖에 앉아서 먹으면 '딱'이겠다 싶었다. 

자리도 맡을 겸, 미리 발코니에 있는 식탁 세팅을 하기 위해 그릇과 반찬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 


문이 닫히는 데 순간적으로 목 뒤가 서늘해졌다. 

평소와 같은 문 닫히는 소리에 목뒤가 서늘해지다니.. 

'기분 탓일 거야'라고 되뇌며, 불안한 직감을 애써 무시한 채 발코니로 향했다. 

밖에서 조금 수다를 떨다가 떡볶이가 다 되었겠다 싶어 방으로 돌아가는데.. 아뿔싸!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열쇠를 문 안쪽에 얌전히 꽂아놓았었다는 사실을. 

즉, 열쇠를 꽂아놓은 상태로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문 안쪽으로는 요리 중인 떡볶이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창문도 모두 닫혀있었다. 

파티는 끝났다. 

급하게 건물 관리인을 호출했다. 떡볶이고 나발이고, 이러다가 건물에 불이라도 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관리인이 급하게 스패어키를 들고 와서 문을 열려고 했지만, 안쪽에 꽂혀있는 열쇠 때문에 스패어 키도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관리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너 내일까지 지낼 데 구하면, 내일 업자들 불러서 열쇠교체해 줄게." 

"그건 상관없는데, 안에서 음식이 끓고 있어..." 


이야기를 듣자, 비장해진 표정의 관리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그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전기톱을 들고 나타났다. 

그렇게 그는 그 전기톱으로 비장하게... 내 방 열쇠구멍 주변을 무참히 도려냈다. 

문이 열리자마자 코를 덮치는 떡볶이의 그 눅진한 냄새란...


떡은 다 퉁퉁 불어 터졌을지언정, 좌충우돌 뒤 먹는 떡볶이는, 의도치 않게 오랜 시간 약불에 끓여져서 소스만큼은 더 진하고 맛있었다. 


문득 궁금해져서,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던 더치 친구에게 물었다. 

"왜 네덜란드는 도어록을 쓰지 않아?" 

친구는 내게 도대체 '도어록'이 뭐냐고 물어봤다. 

열쇠 대신 비밀번호, 혹은 지문인식을 통해 문을 열고 잠글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대답했더니, 

그 친구는 놀라움과 경악을 한 번에 내비쳤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니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다지 안전한 느낌이 아니야. 

비밀번호는 유출될 수 있고, 지문인식도 그다지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아.  

무엇보다도, 보안에 있어서 만큼, 아직 디지털을 신뢰할 수 없어. 열쇠가 훨씬 심플하고 안전해."


음.. 관리인이 왔다 갔다 한 이 난리 부르스를 겪고도 열쇠가 심플하고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니..

"열쇠를 복제하는 것도 가능하잖아." 

"음... 그건 네 말도 맞다. 하하하." 


아니, 이 양반아. 이게 그렇게 해맑게 웃고 넘어갈 일이냐고.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나, 유럽 사람들은 확실히 도어록보다 열쇠의 안전성에 대해 엄청난 신뢰를 보이고 있음은 분명하다. 자신의 집 키라며, 엄청난 수의 열쇠꾸러미를 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긴, 한국에서 이런저런 도어록 관련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 도어록이 마냥 안전하다고 마음을 놓고 있기도 어렵다. 안에서 당기기만 하면 열린다는 맹점을 이용해, 문 틈 사이로 철사고리를 집어넣어 문을 억지로 열기 위해 시도한 동영상을 본 적도 있으니. 

열쇠니, 도어록이니.. 결국 타인을 믿을 수 없음에 본인과 가족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니 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조금은 서글프다. 

낮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싸리문으로 오가도 안전에 대해 걱정 없이 살던 조상님들의 시절이 마치 현실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판타지 세계처럼 느껴질뿐.


이후, 옆구리를 도려냈던 내 문은 임시문(이라고 하지만, 손가락만 톡 대도 아무나 열 수 있는)으로 3일 정도 버티다가, 결국 새 문으로 교체되었다. 

3일간, 문이 있지만 없는 삶이 얼마나 무섭던지. 

역시,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열쇠든, 도어록이든 필요하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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