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선임 한 분께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제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입학생 중에 아빠가 안 온건 우리 아이뿐이었나봐요. 집사람 말로는 애가 하루 종일 풀이 죽어서는 아빠를 찾았다고, 당연히 회사 일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휴가 쓸 생각도 없이 출근 했는데 애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다른 아빠들은 아이 입학으로 휴가를 내도 될 만큼 한가한 건지 신기하기도 하고 뭐, 그렇네요.” 선임의 이야기가 끝나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듯했다. 당시의 나는 이십 대 후반이었기에, 자녀의 입장에서 기억을 되돌렸다. 까마득한 옛날이라 어렴풋하지만 부모님께서 만들어 주신 앨범 속 입학식날의 수진이는 남동생을 업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성실하셨던 아빠는 딸의 입학 순간이 궁금했을 테고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등에 업힌 아들이 무거웠을 것이며 넓은 학교 운동장과 많은 사람들이 신기했을 어린 딸은(친구들도 아빠가 안 왔으니) 그 상황을 그저 당연시 여겼으리라.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제대로 된 기업은 직원 한 명이 없더라도 큰 문제 없이 돌아갈만큼 시스템 구축이 잘 되어있어는 회사다. 하지만 우리가 다니는 한국계 회사들은 직원들의 어깨에 필요 이상의 짐을 지우고 1인 2-3역을 하도록 강요하며 야근을 개의치 않는 직원을 인정해준다. 앞서 말한 선임도 9시 전 퇴근이 쉽지않았다. 한국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해 10여년동안 전문직으로 살았던 그가 무능력해서였을까? 안타깝게도 한숨과 함께 자주 토해냈던 말이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였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분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원급 미혼 직원들에게 ‘결혼하지마’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다같이 야근을 해야 정상적으로 회사가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서, 직원을 더 뽑아달라고 ‘인력 부족’을 호소해보았지만 본사는 우리를 ‘무능한 현장’이라고 되려 힐난했다. 쉽게 일반화할 수 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그 곳에서 우리 한국인 직원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싫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한국회사와 일본회사는 안간다’는 기준을 잡고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외국계 회사의 첫 출근 날, 외국인 친구들에게 들은 첫 마디는 나를 한번 더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나 예전에 한국 회사 다녔는데 다시는 한국 회사 안 갈 거야’ 부끄럽지만 외국인들이 느낀 한국기업에대한 이미지다.
한국에 있는 내 지인들은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한국에 있는 외국계 회사에 간다고 한들 상사가 한국인이라서
선진국의 기업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없다는 말도 들은적있다.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겠지만, 이런 맥락에서 주 52시간 찬성한다. 물론 자리가 잡히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변해야한다. 시스템이 변해야 고질적으로 곪아있는 문제들이 터지고 가족 중심의 행복한 나라에서 정상적인 가정 생활이 가능하다.
가족이 아프면 병간호를 위해 병가를 낼 수 있도록 정책이 마련된 외국계 회사들도 숱하게 많은데, 우리는 주어진 권리인 14일도 눈치보며 써야하는 닫힌 사회에 살고있다. 이름만 들어도 외국인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 글로벌 기업이 많은 한국이다. 아이의 입학식에 당당히 휴가를 내고, 상사의 눈치를 보지않아도 될만큼 업무 분담도 잘 된, 건강한 사내 문화와 개개인의 인식의 변화. 정착되어야한다.
그 속에서 우리가 회복이 빠른 삶을 살 수 있길.
더이상 우리가 한국이 너무 힘들어서 탈조선을 생각하지 않길, 바래본다.
#출근길단상 #과로사회 #과잉충성
#주52시간 #회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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