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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민 Feb 08. 2017

[40+ 논어강좌]살리는 교육, 죽이는 교육

    

스스로 배우려는 열의가 없으면 이끌어 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으며, 한 부분을 열거해 주었을 때 나머지 세 분야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반복해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 (논어술이)


한 때 ‘마마 보이’라는 말이 회자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엄마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녀를 일컫는 말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몸도 마음도 생각도 성장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성공을 위해 수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과잉보호나 지나친 간섭 등은 바른 성장에 장애물이 될 뿐입니다.

최근에 회자되는 말 가운데 ‘티처 보이(teacher boy)’가 언급됩니다. ‘티처 보이’는 지도하고 가르치는 선생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외우는 데 익숙해져서 질문하고,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아니 생각 자체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정작 삶에서 조그만 난관도 해결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습니다.     

(지식은 습득하는 게 아니다. 습득을 넘어 활용하는 지혜로 발전해야 한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교육과 달리 공자는 강연을 통해 흥미 위주로 전달하거나 제자가 궁금해 하는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과 달랐습니다.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통해 강연자가 이미 찾아 놓은 정답으로 이끌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자는 정답을 가리고 제자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신정근 교수는 자신의 저서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하는 시간2》에서 교육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교육(敎育)이란 말은 맹자가 제일 먼저 사용했습니다. 맹자는 군자가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 즉 삼락(三樂) 가운데 교육을 즐거움을 언급합니다.
상의 왕 노릇은 그 안에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君子有三樂)세포함되지 않는다. (而王天下不與存焉)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고 (父母俱存)형제들도 별 탈이 없는 것이 (兄弟無故)첫 번째 즐거움이다. (一樂也)우러러보아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仰不愧於天)굽어보아 사람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俯不怍於人)두 번째 즐거움이다. (二樂也)세상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得天下英才而敎育之)세 번째 즐거움이다.‘교육(敎育)’은 어원상으로 아이를 가르칠 때 회초리를 들어 야단친다는 ‘교(敎)’ 자와 어린 아이를 기른다는 ‘육(育)’ 자로 되어 있습니다. ‘교육’은 어린아이를 가르치고 양육한다의 의미로 어린 아이가 성숙한 어른으로 바르게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education’은 라틴어의 educo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밖으로(e)+끌어낸다(duco)’의 뜻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education은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자질, 능력을 끌어내서 문제 상황을 풀어낸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동서양에서 생각하는 교육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교육은 선생님을 통해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식으로 습득하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과정을 교육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플라톤 “교육이란 혼의 지적 기관을 가장 쉽고 효과적으로 전염시키는 기술이지, 그 기관에 시력을 넣어주는 기술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린 아이가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제대된 방향으로 돌려주는 과정이 교육입니다. 어린 어이가 자라면서 세상 앞에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부모가 정답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 어린 아이 스스로 자신의 방향을 찾도록 도와주는 게 교육입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오늘의 문제는 교육 기회의 양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교육방식이 부모 의식 깊게 자리 잡은 게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리 포터>로 수많은 사람들을 환타지 세상으로 이끈 '조앤 롤링'은 하버드대학교 졸업생들 앞에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조앤 롤링은 대학교 전공 선택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데, 그녀의 부모는 가정형편과 졸업 이후 취직을 위해 돈벌이가 될만한 기술을 배우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님과 이견이 있었고 부모님이 원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게 됩니다. 물론 부모님과 약간의 다툼이 있었고 결국 고전학을 지원하게 됩니다.

“부모님 차가 모퉁이를 돌아가자마자, 독일어를 버리고 후다닥 고전학으로 틀어 버렸죠. 고전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숨겼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아마 졸업식날 아셨을 거예요. 부모님 눈에는 그리스 신화만큼 돈벌이에 도움 안되는 쓸모없는 공부가 또 없었겠죠.” -켄 베인, 《최고의 공부》

조앤 롤링의 성공을 흔히 말하는 것처럼 포기하지 않는 도전에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조앤 롤링이 대학교 진학 시 ‘돈벌이에 도움’이 되는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마음 속 열망을 이끄는 대로 ‘고전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부모님의 강요된 전공이 아니라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따른 전공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앤 롤링은 고전학을 공부했기에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중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부모님의 요구대로 취직에 도움이 되는 전공을 선택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해리 포터》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교육’은 지식을 전해주는 교사만 의지하지 않고, 그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배우려는 열의가 없으면 이끌어 주지 않고 이제까지 교육이 지식을 외우는데만 치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스스로 생각'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사가 전해주는 '지식의 종'이 아닌, 전해 받은 지식으로 세상에서 '지식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식사회에서는 수많은 지식을 머리속에 넣고 다니는 인재를 찾지 않습니다. 그 역할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연결된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겁니다.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으며 세상은 끊임없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작년의 경험과 지식이, 지난 달의 경험과 지식이, 아니 어제의 경험과 지식이 지금은 전혀 쓸모 없는 것으로 변하는 시대에서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은 주입식 교육은 위험합니다. 바로 지금 다른 사람에게는 유용한 경험과 지식이 내게는 오히려 위험한 방법과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 부분을 열거해 주었을 때 나머지 세 분야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반복해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스스로 생각하고 방향을 정하고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갖춰 지혜로 나타내야 합니다. 교육은 세상에 산재해 있는 지식을 모으는 행위가 아니라 내 것으로 만드는 치열한 행위의 과정입니다.


권영민 소장(권영민인문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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