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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ㅇ Jun 13. 2016

안토니오 멘데스의 러시안 이브닝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16 Season

안토니오 멘데스의 러시안 이브닝

6월 10일 (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안토니오 멘데스 Antonio Méndez, conductor

바이올린 발렌티나 리시차 Valentina Lisitsa, piano


프로그램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Tchaikovsky, Symphony No. 5 in E minor, Op. 63


출처: 서울시향 홈페이지 SPO 매거진

===============================================================================기본기와 집중력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연주. 

음악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객석의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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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가 모두 끝나고 콘서트홀을 나오며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종종 귀기울여 듣는 편이다. 무대와 객석이 교감한 뒤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정말 극명하다. 이날 관객들은 분명히, 뜨거웠다.


예정되어있던 프로그램대로라면 여든 다섯 살의 노장 겐나디 로즈데스드벤스키 와 그의 아내 빅토리아 코스트니코바가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하였겠지만, 지휘자의 일신상 이유로 다소 급하게 프로그램과 지휘자, 협연자가 모두 변경되었다. 짧은 시간동안에 프로그램을 변경하고, 대체 연주자를 섭외하고, 관객에게 이를 신속하게 알린 재단법인의 깔끔한 일처리에 우선 박수를. 

(어쩐지 쇼스타코비치와 시향은 인연이 그다지....ㅠ)


서른둘의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는 러시아 음악을 지휘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그리고 협연자 발렌티나 리시차는 25만 구독자를 거느린 명실상부한 유튜브 크리에이터이다. 인터뷰에서도 유튜브를 통해 많은 연주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 낼 '러시안 이브닝' 이 어떨지 매우 궁금했다.


어찌보면 자주 연주되는 곡들이지만 의외로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가장 최근 교향악축제에서 별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보다는 누가 쳐도 좋겠지.. 라는 생각으로 큰 기대는 품지 않았었다. 유튜브의 많은 영상에서 그렇듯이 리시차는 아름다웠고, 타건에 힘이 넘쳤다. 초반에 약간 오케스트라와의 합이 맞지 않았지만 안토니오 멘데스는 밀어 붙였고 리시차는 일단 따라가고 보자, 는 것 같았다. 좋은 피아니스트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모두 가진 듯 했다. 크레믈린의 종소리부터 노래하듯 낭만적인 2악장의 피아니시모, 그리고 파도처럼 몰아치는 3악장까지 그녀의 피아노는 일관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긴 손가락, 긴 팔, 장신 등 좋은 신체조건을 충분히 활용하여 힘있는 연주를 하는 편이었지만, 그 힘은 잘 계산되어 있었고 조절가능한 힘이었다. 그렇지만 미스터치가 많았고, (자리가 이상해서였는지 소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페달링으로 인해 생겨나는 작은 울림들이 때때로 거슬릴 때가 있었다.


이 연주자에 대한 평가가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선회하게 된 것은 앙코르의 힘이 컸다! 그녀의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 중 하나, 헝가리안 랩소디 2번을 무시무시한 스피드와 미친듯한 발랄함으로 쳐버린(!) 것이다. 십 분 남짓한 시간 동안 관객들은 개미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온통 그녀의 신박한 손놀림에 푹 빠졌다. 그녀의 헝가리안 랩소디는 때때로 쇼팽같았고, 때때로 베토벤같았고 드뷔시 같았다. 작정하고 스스로의 매력과 재능을 한번에 뽑아낼 곡을 찾아 연주하는 느낌이었다. 관객들은 커다란 박수로 화답했다. 크게 웃으며 깊이 인사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분명 매력이 넘쳤다.


다채로움으로 승부했던 리시차와는 달리 안토니오 멘데스와 서울시향의 2부는 아주 끈끈하고 되직한 일관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일단은 목관 쪽 주요 수석이 자리하였기에 안심. 어스름 속에서 인상 팍 쓰며 시름하듯 시작하는 클라리넷은 임상우 수석이 정말 기막히게 연주하여, 단박에 이 연주는 (호른을 비롯한 금관군이 평타만 쳐준다면) 성공인 것이다, 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곧장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즉각적인 감흥(!)이 쫘아악 펼쳐지는데 빡빡한 숲이 바람을 맞아 물결치는 인상이었다. 안그래도 시향의 특기(이지만 최근 몇번의 연주회에서 이렇다하게 드려낸 적이 없는) 두터운 현악기군의 초고밀도 음색은 이내 콘서트홀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였다. 


장대비같은 현의 중심에는 비올라가 있었고 평소 시향의 저현부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마저도 "아니 우리 비올라가 이렇게 잘했다니!"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올라의 구슬픈 울림이 곡의 전체적인 톤을 형성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첼로-더블베이스와 2바이올린-1바이올린을 대칭형으로 층층이 쌓아올린 듯 느껴졌다. 목관 쪽도 마찬가지로, 바순을 중심으로 클라리넷,오보에,플룻이 아주 조금씩만 다른 음색을 내도록, 그리하여 음악이 밀도있게 짜여지도록. 앙상블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 시향(...)에게 이런 스타일은 아주 좋은 배움의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곡을 완성하는 것은 역시 금관의 우람함 아닌가. 투박하게 쭉쭉 뻗어야 할텐데...시향의 아픈손, 아킬레스건, 격오지(?) 금관이 잘 해줘야 할텐데...라고 간절히 바라며 계속 듣게 되더니 어느새 끝나있더라....가 아니다! 이 지휘자와 서울시향은 엿을 매치듯이 쫀쫀하게(?) 호흡을 이어갔는데 지휘자의 모션에 딱 맞게 음악도 착착 변하는 모습이 참, 오랜만이었다. 그 집중력이 관객석에 정말 고스란히 전달되어, 모두가 러시아의 애수에 흠뻑 빠진 채-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금관의 뚜렷한 실수 없이- 곡이 마무리되었다. 힘이 빠질법한 부분에서도 차분하게, 유연하게 넘어가도 될 것같은 부분도 또렷하게, 지휘자도 단원들도 정말 독하다 싶게 무서운 응집력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얼마나 서울시향을 사랑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던 호연이었고, 서울시향의 실력은 더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성'쪽으로 무게가 이동했음을 확신했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콘서트홀을 빠져나오는 관객들의 상기된 표정과, 하이톤으로 이어지는 대화가 웅변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안토니오 멘데스가 서울에 온다면 반드시 찾아갈 것이다. (아예 수석 객원 지휘자로..와도..환영이고...음? 이정도의 궁합..찾기 어렵잖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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